크리스천으로서 나는 1월이면 하이든의 ‘천지창조’를 들으며 한 해를 시작하고, 12월이면 헨델의 ‘메시아’를 들으며 한 해를 정리한다. 이것은 성경의 시작인 구약성서의 창세기를 음악으로 표현한 ‘천지창조’와 성경의 마지막인 신약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음악으로 표현한 ‘메시아’로, 한 해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는 내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한 연례행사이다. 그래서 2012년을 시작하면서 연말 소개했던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에 이어 ‘천지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오라토리오는 ‘메시아’, 멘델스존의 ‘엘리야’와 함께 세계 3대 오라토리오로 불린다. 이들의 공통점은 독일계 음악가로서 영국에서 작곡해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영국이 교황의 영향력에서 비교적 자유로웠으며, 종교개혁 이후 생겨난 수많은 개신교도들에 의해 예배음악보다 오라토리오와 같은 종교음악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높았기 때문이다. 앞서 메시아에서 언급했듯이 오라토리오(oratorio)는 넓은 의미에서는 종교음악이지만 꼭 종교적인 의식과 관계된 것은 아니며, 그래서 형식에 제한 없이 교회나 예배당보다는 콘서트홀이나 대중 극장에서 더 많이 연주되는 대중적인 음악이다. 구성은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오케스트라, 독창, 중창, 합창이며 화려한 무대와 의상은 없지만, 큰 규모나 다양성으로 인해 종교적인 내용을 담은 오페라로 생각해도 좋다.

cara.JPG작곡가 하이든은 1732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77세의 나이로 빈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18세기 후반 고전파 양식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공헌을 한 음악가이다. 104개 곡에 이르는 교향곡을 작곡하여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70여 곡의 현악사중주를 작곡하여 음악의 기초를 세우고, 소나타 양식을 확립시킨 음악사의 중요한 인물이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 굴곡과 사연이 많은 삶을 산 비운의 음악가들과는 달리 하이든은 열심히 일하고 모범적으로 산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전체적으로 밝고, 명랑하고, 따뜻하며 솔직하다. 쾌활하고 따뜻한 유머와 인정미 넘쳤던 그는 음악을 통해 부와 명성을 얻었고, 이로 인해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62세 때 ‘메시아’를 듣고 감동과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은퇴 후 영국을 여행할 때였는데 하이든은 이 위대한 음악 앞에서 부서지며 새로운 도전을 품게 된다. 먼저 700여 곡이 넘는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 회의를 느꼈으며, 헨델처럼 모든 역량과 열정을 바쳐 하나님 찬양음악을 만들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그리고 3년의 노력 끝에 불후의 명작 ‘천지창조’를 완성했다.

성서의 창세기에 기초하고 존 밀턴의 서사시를 참고한 가사로 이를 작곡할 때 그의 신앙은 절정에 달해 하나님과 영적인 교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이때가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천지창조’는 하이든 음악의 총결산이다. 그것은 그의 본성 깊은 곳에 내재한 신앙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다.

‘천지창조’는 총 3부 33곡으로 구성되었고 제1와 2부에서는 가브리엘, 우리엘, 라파엘의 세 천사가 등장하여 창세기에 따른 6일간의 창조위업을 노래한다. 제3부에서는 마지막으로 창조된 아담과 이브가 등장하고 대천사 가브리엘만 남아 하나님의 업적을 찬양하는 동시에 환상적인 천국을 묘사한다.

bun.jpg어느 후작의 궁정에서 노장 하이든이 휠체어를 타고 나와 직접 초연한 ‘천지창조’는 관객들의 환호와 기립박수로 장내가 소란할 정도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빛이 생겨라 말씀하시니 빛이 생겨났다’의 힘차고 감동적적인 합창 부분에서는 청중이 저도 모르게 일어나 하늘을 가리키며 “저 높은 곳에서”라고 외쳤다는 일화도 있다. 영국에서 공연할 때는 공연이 끝난 뒤 열화와 같은 청중의 기립박수 속에서 하이든은 “이 작품은 나의 작품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를 통해 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It is not from me, it is not about me. It is from him, it is about him: 이것은 나에게서 온 것도 아니고, 나에 대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휠체어를 타고 사라졌다. 이것이 공식적인 하이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훗날 그는 한 친구에게 “나는 ‘천지창조’를 작곡하는 동안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너무나도 충만했다. 피아노 앞에 앉기 전 신뢰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하나님을 훌륭하게 찬양하는 데 필요한 재능을 달라고 기도드리곤 했다”고 말했다. 또한 하이든은 작곡을 마칠 때마다 각 작품의 끝에 ‘하나님께 영광을(Laus Deo)’이라고 써넣어 그의 신앙을 작품에 표현했다.

‘천지창조’는 전체적으로 하이든 특유의 절묘한 표현들이 효과적으로 발휘되어 웅장하고 숭고하면서도 친숙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구성됐다. 그의 성품과 그의 신앙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누구든지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는 특별히 ‘하나님의 자비와 전능하심’을 잘 느낄 수 있게 한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이를 들으면 전체적인 앙상블과 화음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합창음악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음반으로는 거장 카라얀 지휘곡이 명반으로 남아있다. 군둘라 야노비츠(알토), 프리츠 분덜리히(테너), 피셔 디스카우(바리톤) 등 전설의 성악가들이 함께했다. 탁월한 미성의 테너 분덜리히가 이듬해 갑작스런 사고사를 당함으로 그의 마지막 레코딩이 된 음반이기도 하다. 카라얀과 함께 20세기 지휘계를 양분했던 번스타인은 비엔나 필과 뉴욕 필 등 두 종류의 훌륭한 음반을 남겼는데, 규모면에서 더 화려한 비엔나 필의 음반을 추천하고 싶다.

송정호 음악칼럼니스트
mikesong0713@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