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ddd.jpg고전파 음악 시대를 연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 J. Haydn, 1732년 3월31일~1809년 5월31일)은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며 기악곡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작곡가이다. 104곡의 교향곡과 83곡에 이르는 현악 사중주곡을 남겼으며, 음악의 모든 장르에 걸쳐 500여 곡의 작품을 남긴 위대한 음악가이다. 그러나 바흐나 헨델,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비해 상대적으로 하이든의 음악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단조로운 멜로디로 인해 전문 연주자들이 하이든의 곡을 꺼리는 점도 있지만, 우리가 한번 들으면 알 수 있는 익숙한 멜로디조차 하이든의 곡인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이든의 현악사중곡 ‘세레나데’의 멜로디와 장학퀴즈의 시그널로 유명한 트럼펫협주곡은 수많은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어 모두가 익히 알고 있지만, 정작 하이든의 곡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한 현악사중주곡 ‘황제’는 지금 오스트리아의 국가로 사용되고 있으며, 찬송가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의 멜로디로도 유명하다.

빈(Wien) 고전파를 대표하는 하이든은 1732년 오스트리아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까운 친척을 통해 음악을 처음 접했던 하이든은 어릴 적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여 8살 때 빈 소년합창단의 전신인 성 스테파노 대성당의 소년 성가대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17세에 이르러 변성기로 인해 합창단에서 탈퇴하고, 이후 10년 동안 레슨과 연주생활로 어렵게 살아갔다. 이 시기 하이든은 민생고에 시달리다 거리의 악사로도 나섰으며, 바이올린 연주자와 성악가로 돈을 벌면서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불안정했던 청년기를 보낸 후 1759년 귀족의 궁정악장으로 고용되어 이듬해 결혼하여 안정을 되찾는 듯 했지만, 귀족이 파산하면서 다시 실업자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761년 에스테르하지 후작과의 만남은 그의 음악인생을 결정짓는 운명이 되었다. 그는 에스테르하지 궁정의 부악장으로 발탁되어 1765년 악장으로 승격되고, 이후 30년 동안 한결같이 악장으로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꾸준하고 성실하게 작곡활동을 하였다.

hy22.jpg궁정악장의 삶은 경제적으론 비교적 안정된 삶이었지만, 바쁜 중노동의 연속이었다. 귀족에게 예속된 음악가는 결국 귀족을 위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해야만 했다. 그래서 하이든의 작품 중 대부분은 귀족을 위한 연회 음악으로 작곡된 것이었다. 한 해에 200여 회의 각종 연회와 파티를 치러야만 했던 궁정악장의 삶은 가족조차도 만나기 힘든 고달픈 생활이었다고 한다.

1772년 여름 하이든이 이끌고 있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불평도 최고조에 달했다고 한다. 온화한 성품의 하이든은 기지를 발휘하여, 새로운 교향곡으로 후작을 설득하였다. 하이든의 교향곡 45번 ‘고별’은 마지막 악장에 간청하는 듯한 아다지오가 반복되면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한 명씩 악보를 접고 퇴장한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명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쓸쓸히 곡을 마치게 되는데, 연주가 끝난 후에 후작은 하이든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특별휴가를 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하이든의 작품에는 부제가 붙어있는 곡들이 많은데, 곡마다 재미있는 일화들이 전해지고 있다. 교향곡 ‘시계’는 시계추의 소리와 비슷해서 붙여졌고, ‘놀람’은 당시 연주회 도중 졸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2악장에 ‘큰북 연타’를 사용해서 붙여졌으며, 역시 2악장의 ‘나팔소리’로 인해 붙여진 ‘군대’나, 런던에서 작곡해서 붙여진 ‘런던’ 등 재미있는 부제가 붙여진 작품들이 많다. 심지어 ‘기적’ 교향곡은 초연 때 공연연장 로비의 샹들리에가 떨어졌는데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어 음악적 내용과는 상관없이 ‘기적’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렇게 하이든의 음악들은 재미있는 일화와 함께 하이든식의 위트가 담겨져 있기도 하다.

hy33.jpg30년 동안 한 곳에서 성실히 일했던 하이든은 58세에 비로소 궁정악장에서 은퇴하여, 자유롭게 창작에 전념하여 불후의 명곡들을 다수 남기게 된다. 영국에서 활동했던 바이올린 연주자 잘로몬의 초청으로 2차례 영국을 방문하여 작곡한 12개의 교향곡은 잘로몬교향곡으로 불리며 영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1798년 초연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는 음악인생의 대미를 장식하는 최고 걸작이 되었다.

1809년 77세의 삶을 마감한 하이든은 클래식 음악사에 보기 드문 행복한 음악가였다. 그는1750년대에 세상을 떠난 바흐와 헨델의 음악을 청년기에 직접 접할 수 있었고, 24살 연하였던 모차르트를 스승이라 칭하며 음악적 우정을 쌓기도 했으며, 베토벤을 가르치며 천재에게 영감을 준 특별한 음악가로서 이들과 함께 빈 고전파의 황금시대를 이룩하였다.

삶의 대부분이 궁정악장으로 예속된 평범한 삶이었지만, 그는 꾸준히 자신의 창작열을 불태웠고, 매사에 긍정적이며 성실한 음악가였기에 하이든의 음악은 대부분 밝고 명랑하다. 그렇기 때문에 교향곡의 아버지, 현악사중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든의 음악은 결코 어려운 음악이 아니다. 그의 음악에 대한 깊이의 논란을 배제하고, 소나타 양식을 확립하는 등 음악의 기초를 세운 그의 업적만으로도 하이든의 음악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송정호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