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zart1.JPG35년의 짧은 삶을 살다 간 비운의 천재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그의 이름 중간에 붙은 아마데우스는 ‘신의 은총’이라는 뜻으로 모차르트는 이미 완벽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신의 은총을 받은 음악가였다. 음악의 모든 장르에 걸쳐 1천 곡에 가까운 작품을 남겼으며, 모두가 음악적으로 모범이 될 만한 귀중한 유산으로 평가 받는다. 1990년대에 필립스(Philips)레코드사에서 180장의 CD로 모차르트의 전 작품을 담아 발매한 적이 있는데 그의 작품 모두를 들으면서, 경이로운 감탄만을 반복했던 기억이 있다. 5살 때 작곡했던 피아노 소나타로부터 마지막 작품 ‘레퀴엠’까지 그의 작품에는 한결같이 빛나는 천상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35년의 짧은 시간에서 창조되었던 방대한 모차르트의 음악은 영원히 빛을 발하는 찬란한 유산으로 우리의 곁에 남아있다.

먼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3살 때 연주를 시작했으며, 4살 때 피아노협주곡의 작곡을 시도할 정도로 글을 배우기도 전에 악보를 썼다고 한다. 5살 때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하고, 6살 때부터 본격적인 연주여행을 시작함으로 프로 연주자로 활동했으며, 8살 때 교향곡을 작곡했다. 또한 12살 때 종합예술인 오페라를 작곡하고, 14살 때 현악 4중주를 작곡하는 등 상상할 수 없는 초인적 능력을 발휘하였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초기 작품들이 어린이의 습작수준이 아닌 완벽한 형식을 갖춘 작품들이란 것이다. 작곡가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 신동 연주자로 유명했다. 3살 때부터 연주를 시작한 그는 6살 때부터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었으며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천재 연주자로 명성을 떨쳤다. 어린 모차르트에 대한 인기는 무리한 연주여행으로 이어졌으며, 그의 인생에 두 가지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모든 것을 흡수하여 음악으로 창조해내는 어린 천재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체코 등 유럽의 모든 도시를 순회하며 새 지식과 작곡기법, 사상, 유행, 민속적 요소까지 모든 세상의 흐름을 직접 듣고 볼 수 있었다. 이때 보고 익힌 모든 것이 그의 작곡기반이 되어 다양한 창작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무리한 연주여행은 그의 체력을 더욱 약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교통수단이라는 것이 마차뿐이었으므로 몇 날 며칠을 덜컹이는 마차 안에서 보내야만 했고, 당시 유럽 전역을 휩쓸던 각종 전염병과 질병에도 노출된 모차르트에게 35년의 삶은 어쩌면 결코 짧았다고만 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mozart2.JPG17세에 잘츠부르크의 궁정음악가에 오르고, 7년간 궁정음악가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모차르트의 뛰어난 재능은 항상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는 안정된 삶이 보장된 구속보다는 자유롭게 꿈을 실현해내는 도전을 선택하였다. 궁정을 박차고 나온 그는 25세에 비인으로 정착하여 평범한 여관집 딸 콘스탄체와 결혼하고, 오페라를 중심으로 창작을 불태운다. 자유인 모차르트는 비로소 귀족이 아닌 서민과 함께하며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사회 풍자적인 오페라를 발표하여 성공을 이어가지만, 헤픈 씀씀이로 인한 방탕한 삶으로 항상 가난을 걱정하며 살아야만 했다.

31세 때 엄격했지만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의 죽음과 연이어 아들의 죽음마저 경험해야했던 모차르트의 심신은 더욱 더 피폐해져만 갔다. 그러나 그의 죽음까지 마지막 4년 동안 후기 3대 교향곡으로 불리는 교향곡 39번, 40번, 41번을 비롯하여, 오페라 ‘돈 조조반니’ ‘마술피리’, 죽은 자를를 위한 미사곡 ‘레퀴엠’ 등 최고의 유산을 남긴다.

모차르트의 죽음을 이야기 할 때, 거장 밀로스 포먼 감독이 1984년 연출한 영화 ‘아마데우스’를 떠올리게 한다.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8개 부문 본상을 휩쓴 이 영화는 영국의 극작가 피터 셰이퍼의 희곡을 영화한 것으로 작곡가 살리에리의 시각으로 모차르트의 삶을 재조명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모차르트가 아닌 살리에리이며, 모차르트의 죽음은 영화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

1791년 신원을 알 수 없는 익명의 의뢰인이 죽은 자를 위한 미사곡을 모차르트에게 작곡해 달라고 청한다. 영화에서는 질투의 화신인 살리에리로 묘사했지만, 당시 재력가였던 발제크 백작이 사망한 자신의 아내를 위해 모차르트에게 의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어쨌든 모차르트는 이 곡을 작곡하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고, 자신을 위한 것으로 안다고 아내 콘스탄체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남은 모든 역량을 다하여 작곡하였지만, 마지막 곡을 완성하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르게 된다. 훗날 그의 제자 쥐스마이어가 완성하여 2년 후인 1793년 비인에서 초연했던 레퀴엠은 모차르트의 마지막 유작이 되었다.

모차르트는 젊은 시절 잦은 여행을 통해 마차 안에서 수많은 작품을 썼다. 그래서 ‘그의 길이 음악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연주자는 자신의 음악인생이 모차르트로 시작해서 모차르트로 끝났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천상의 멜로디에 반해 음악을 시작하고, 결국 음악인생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여정으로 순진무구함을 동경하는 모차르트를 찾게 된다는 이 고백은 모차르트 음악을 대변하는 단적인 예라고 말할 수 있다.

모차르트 음악을 청할 때면, 항상 쓸데없는 고민을 하게 된다. 너무 많은 곡들 중에 무엇을 들을까 고민하지만, 결국 눈을 감고 집은 어떤 음반도 나에게 실망을 준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곡이 무슨 곡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모차르트 음악은 다 좋으니까….

송정호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