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i41.jpg보조가이드가 따라붙어서 여자대원의 하산을 도왔다. 이를 보는 남은 대원들의 마음은 착잡했다. 다음은 누구 차례냐? 아니면 죽기 살기로 올라갈 것인가. 그러다가 죽기도 한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은 터다. 후진국답게 통계의 정확성은 없지만. 특히 심장병이 있거나 고혈압, 당뇨를 앓는 사람들의 위험도는 높았다. 실제로 키보 바로 전의 호롬보 캠프(Horombo Camp, 3,700미터)에 있을 때 백인 여성이 들것에 실려 내려왔다. 젊지만 몸이 약간 부한 것으로 보였다. 리어카 같은 철물구조물에 바퀴 한 개를 단 ‘킬리’ 스타일 앰뷸런스다. 자세히 보니 쇼크업소버(shock absorber)는 있는데 브레이크 장치가 없었다. 내리막길에서는 여러 명이 힘으로 브레이크를 거는 순수 수동식이었다. 여인은 만사가 귀찮은 듯 몸을 슬리핑백으로 감싸고 누워 있었다. 구조비(Rescue fee)라는 명목으로 20달러를 냈겠지만 여인은 무사했을 것이다. 그리곤 ‘킬리’라 하면 평생 치를 떨 것이다.

세계가 동경하는 ‘킬리’에 케이블카가 있다면? 아니면 산길, 논밭 길을 곧잘 오르내리는 ATV(All Terrain Vehicle)가 있다면? 1대라도 기증해 주는 사람은 없을까. ‘킬리’ 앰뷸런스 대신 얼마나 효과적일까.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사라졌다.

kili42.jpg울산에서 왔다는 스포티한 중장년을 키보에서 다시 만났을 때 반가워서 “성공했어요?”라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최정상까지 고도 300미터를 남겨둔 길만스 포인트에서 고소증이 심했다는 것. 비틀거리면서도 정신력으로 계속 나아가려고 하자 가이드는 “죽고 싶으면 가라”라고 내뱉더라는 것. 그의 투박한 경상도 말투에서는 아쉬움과 분함이 절절이 배어났다. 킬리 등정에 우리 1인당 비용 5천 달러와는 달리 거의 1만 달러(1천만 원)를 소비했다는 그로서는 분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우리는 오싹했다. 그의 얘기가 바로 내 경우같이 다가왔다. 등정성공을 막는 고산증(Altitude sickness)은 누구에게 닥칠는지 아무도 모른다. 울산사나이 같은 건강체가 중도하차할 줄 누가 예측했을까. 자칫하면 미끄러져 내리는 돌과 먼지, 흙의 산길, 이것이 등산가에게 아무리 적대적이더라도 젖 먹은 힘까지 내면 된다. 그러나 고산증의 엄습은 차원이 다르다. 그날 밤 조심조심 올라가는데 갑자기 구역질이 났다. 진작부터 머리는 아팠지만 참고 견뎠다. 토했다. 먹은 게 없으니 나올 것도 없었지만 구토는 전의를 상실시켰다. 큰 일 당하기 전에 이 정도에서 그치라는 신호로 해석됐다. 뒤따르는 2명의 여자대원도 “이 참에 묻어내려 가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세 사람은 진로를 180도 바꿨다.

kili43.JPG한편 시원하고 한편 섭섭한 감정이 온 몸을 덮었다. 그런데 내가 왜 이 고생을 하지. 도대체 킬리 등반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도중하차가 반드시 수치스러운가. 하산하면서 대원들에게 물었다. 킬리 등정에 실패했으니 도전하러 다시 오겠는가. 노. 킬리 등정을 친지에게 추천하겠는가. 극기나 고행 훈련이라면 오케이. 자녀 교육용도 오케이. 그러나 60세 이상자에게는 노 였다. 아무리 그래도 등정에 실패했으니 아쉬움은 남아 있다.

새벽이 가까워졌을 때 또 한 대원이 중도하차했고 그 뒤를 이어 여자대원 정옥순, 김나미 2명이 돌아왔다. 이들은 길만스 포인트까지 올라간 ‘위대한’ 대원들이었다. 둘은 남녀 14명이 잠시 눈을 붙이게 만든 캠프에 돌아오자 신발도 벗지 못하고 드러누워 버렸다. 정신 못 차릴 정도로 피로했던 것이다. 산에 남은 두 사람, 나장환 대장과 나가토 마사오씨는 아침 8시께 돌아왔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던 대원원들은 이들이 우후루(Uhuru, 5,895미터) 최정상까지 갔었다는 보고에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 팀에서도 드디어 해냈구나. 창피는 면했다. 수천리 길을 온 보람이 살아났다. 프로 등산가들도 처음 출발은 여럿이 해도 정상도달은 박영석이나 엄홍길만의 몫이 아니던가. 박·엄씨의 성공은 전 대원의 성공이지 단 두 사람만의 것은 아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여자대원 2명이 길만스 포인트까지는 갔으니 도합 11명 중 무려 4명이 성공한 것이었다. 11명 중 70대가 3명이나 있었던 점까지 고려하면 우수한 팀 성적이었다. 남자 2명에 여자 2명이 짝짓듯 고루 성공한 것도 반가운 일이었다.

그런데 나·나가토 두 사람은 인삼녹용을 먹어서 정상을 쳤는가. 아니면 본인만의 숨겨둔 비법이 있었나. 둘 다 아니다. 본인들의 노력에 대한 마땅한 응보였다.

우선 준비에 철저했다. 나 대장은 주말마다 장거리로 등산했고 매일 토론토 동쪽 끝의 루즈밸리 파크를 2시간씩 걸었다. 그것도 부족한 듯 체력양성을 위해서 자주 수영을 했다. 킬리를 오르는 그의 체력은 전혀 70세 고령자가 아니었다. 킬리 산중에서 생일을 맞은 65세 나가토씨의 준비 역시 철저하기가 대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