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주에 걸쳐 연재했던 슈만과 브람스의 삶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슈만의 아내 클라라 슈만이다. 9살 연상의 슈만과 14살 연하의
브람스, 독일 낭만파를 대표하는 이 두 거장의 사랑을 받은 비련의 피아니스트 클라라는 슈만과 브람스의 음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클래식 음악사에 남겨진 수많은 사랑 이야기 중에서도 슈만과 클라라의 일화는 유명하다. 위대한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20세의 청년
슈만은 당시 최고의 피아노 선생님이던 프리드리히 비크 교수의 제자가 되어, 그의 외동딸 클라라 비크와 운명적 만남을 하게 된다. 당시 클라라의
나이가 11세에 불과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오누이간의 순수한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이것이 이성간의 사랑으로 발전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5년 뒤, 16세의 클라라와 25세의 슈만은 뜨거운 사랑을 서로 확인하고 결혼하려 했지만, 비크교수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그는 평소 슈만을 아들처럼 사랑하며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지만 유능한 피아니스트였던 사랑하는 외동딸을 피아니스트가 되려다 실패한
무명의 작곡가에게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비크는 스승에서 악인으로 돌변하여 슈만을 괴롭혔다. 두 사람의 결혼을 방해하기 위해 슈만을 중상모략
했으며, 음악계에 다시 설 수 없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 슈만을 비난하고 고립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만의 집착과 굳은 마음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클라라에 대한 믿음과 확신은 더욱 강해졌다. 두 사람은 마침내 역경을 딛고 라이프치히 교외의 한 교회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이때 슈만의 나이 30세, 클라라의 나이 21세였다.

분노한 비크교수는 사상 초유의 결혼무효 소송을 제기, 법정투쟁까지
벌여가며 이들의 결혼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어려움 속에서도 열정적으로 사랑을 이뤄낸 슈만은 음악사에 영원히 기억되는 최고의 낭만주의
작곡가가 되었으며, 사랑하는 아내 클라라에게 헌정한 아름다운 가곡집 ‘미르테의 꽃’을 통해 그의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사랑을 쏟아놓았다. 비록
결혼 후의 삶이 정신병 때문에 고통으로 점철됐지만 아내 클라라의 헌신적 사랑은 슈만이 46세의 짧은 생을 정신병원에서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식지 않았다.
37세의 젊은 미망인 클라라는 77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40년 동안 남편 슈만과의 사랑을 지키며 독신으로
살았다. 슈만이 세상을 떠난 후, 아내 클라라는 그의 모든 악보를 손수 정리하여 직접 출판하였고 피아니스트로서 연주회를 통해 슈만의 작품을
알리는데 평생 노력하면서 남편을 기렸다.
이들의 운명적 사랑 이야기 뒤안엔 위대한 작곡가 브람스가 있었다. 브람스는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지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사랑을 모르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반대로 그는 너무도 헌신적이며 순수한 사랑을 가슴에 안고 있었고, 또한
사랑을 평생 갈구했으며 사랑을 지켜나갔다. 그는 20세의 젊은 나이에 만난 스승 슈만을 깍듯하게 존경하였으며, 14살 연상이던 클라라를 마음 속
깊이 사랑했다. 슈만이 정신병으로 고통 받을 때도 제자로서 늘 곁을 지켰고 슈만이 죽은 뒤 그의 아내 클라라와 8명의 자녀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브람스는 사랑해선 안 될 스승의 아내 클라라를 남몰래 마음으로만 연모하며 이를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슈만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여생을 헌신하던 클라라를 위해 그녀의 편에 서서 리스트, 바그너와 맞서 논쟁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사모하는 마음을 속 시원히
털어놓지도 못하고 늘 존경으로 표현했다. 짝사랑의 아픔을 창작열로 불태우며 항상 한걸음 뒤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18896년 77세의 나이로로
클라라가 세상을 떠나자 브람스는 그때서야 “나의 삶의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요, 가장 위대한 자산이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상실했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묻은 심정을 토로했다. 그리고 이듬해 대작곡가 브람스도 64세를 일기로 클라라의 뒤를 따랐다. 클라라와 브람스가 모두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브람스의 숭고한 사랑은 세상에 알려졌고 그가 독신으로 살았던 이유도 이해하게 되었다.

영화와도 같은 이 세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많은 감동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연인간의 사랑을 얘기할 때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를 생각하곤 한다. 슈만처럼
솔직하고 열정적으로 용기 있게 표현하는 사랑과 브람스처럼 마음속 절제된 숭고함으로 헌신하는 사랑의 대조적인 모습도 흥미롭지만 이들의 삶에서
보여주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지막 희망’이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브라우닝은 ‘삶은 죽음에 의하여 완성된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슈만의 삶을 지켰고 이후 그를 기리기 위해 ‘마지막 희망’으로 헌신했던 클라라, 사랑해선 안 될 그녀를 먼발치에서 끝까지 바라보기만
했던 브람스를 통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했다.
슈만이 죽은 뒤에 그를 향했던 클라라의 사랑이 알려졌고, 클라라가
죽은 뒤에야 브람스의 사랑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의 애틋한 사랑을 보면서 문득 시인 고(故) 김수영의 말이 생각난다.
“죽음이라는 전체를 놓지 않고서는 그 형상이 온전히 보이질 않는다…죽음이 없으면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죽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