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 의사, 남매 치과의사, 자매 변호사, 형제 공인회계사뿐 아니다. 부동산중개인, 모기지브로커, 청과상에서 목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에서 밀어주고 끌어주며 함께 가는 가족들이 캐나다 한인사회에도 적지 않다. 한국일보는 ‘한 길 걷는 가족’ 시리즈를 통해 이들 가족들의 생생한 얘기를 연재한다.
딱 들어선 순간 범상치 않음이 한눈에 들어왔다. 치과의원이라기보다는 세련된 카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아니나 다를까.
“대학시절까지 그래픽디자인을 하고 싶었어요. 병원 내부 제가 직접 디자인한 겁니다.”
조성환(33)씨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쉽게 말을 던졌다. 리셉션데스크에서 치료실, 소독실, X레이실, 화장실까지 현대적 감각의 통일된 이미지가 흘렀다. 치과의사가 인테리어디자인이라~.
그는 본래 미술지망생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래픽디자인에 빠졌고 토론토대에서 인체생리학과 수학을 복수전공하면서도 미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 2년간 전공과 관계없는 직장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업으로 삼아 일한 적까지 있다. 아마추어는 아닌 셈. 누이동생 조장은(31)씨도 거들었다.
“병원 개업 준비과정에서 오빠는 인테리어, 저는 치과기기 등을 맡기로 역할분담했는데 제가 내부시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불평 한 번 했다가 혼만 났어요. 프로페셔널에게 감히~.”
사실 치과의사 경력에선 동생 장은씨가 오빠보다 2년 선배다. 성환씨가 77년생, 동생이 79년생으로 2살 터울이지만 토론토대는 같은 해 입학했다.
성환씨가 고등학교 3학년, 장은씨가 중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을 따라 이민왔다. 아버지 조원(66)씨와 어머니 최정자(60)씨는 캐나다 이민 4개월 전에야 자녀들에게 말해줬다. 성환씨는 죽어라 대입공부에 매달리다 캐나다로 오면 좀 좋아지겠거니 했는데 웬걸. 영어 때문에 고생만 실컷 했다. 그래서 대학도 2년 늦게 동생과 함께 들어갔다.
둘 다 대학시절 치과의사를 꿈꾼 적은 별로 없었다. 같은 토론토대에서 약리학을 전공한 장은씨는 “학비가 싼 매길대 치대에 운 좋게 입학할 수 있었다”고 말했지만 성환씨는 “사실 제 동생은 저보다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했다”고 치켜세웠다.
대학 졸업 후 그래픽디자인이라는 엉뚱한 일을 하고 있는 오빠에게 장은씨가 치대 진학을 은근슬쩍 권유했다.
“잘 몰랐는데 치과대학 공부를 하다 보니 내 적성에 딱 맞아~ 오빠가 하면 더욱 좋을 텐데~.”
성환씨는 동생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부랴부랴 준비해서 2년 뒤인 2003년 미국 보스턴대 치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2살 아래인 동생보다 2년 후배가 됐고 토론토 교민사회에 젊은 남매 치과의사가 탄생하게 된 것.
장은씨는 매길대를 졸업한 뒤 밴쿠버 UBC(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성환씨는 보스턴대, 로체스터대 레지던트를 끝낸 후 미국에 남을까 고민도 해봤다. 아무래도 가족이 있는 곳이 좋을 것 같아 캐나다 치과의사시험을 치르고 토론토로 돌아왔다.
몇 년간 남매는 각자 남의 치과의원에서 경험을 쌓아갔다. 악착같이 일했다. 많을 땐 9군데를 돌면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기도 했다. 지난해 중반 개업 얘기가 나왔다. 남매 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의기투합했다. 아버지도 적극 권유했다.
“젊은 우리가 개업을 한다는 게 겁나는 일이었지만 큰 고민 없이 결정했어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자신 있지만 개업은 비즈니스다. 그러나 남매는 용감했다. 여러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게 도움이 되었다. 학교 다닐 때 학비도 거의 스스로 해결했는데 병원개업을 위해 부모님께 손을 내밀 수는 없는 노릇. 베이뷰/롬필드에 있는 현재 병원 위치를 부모님이 골라줬다. 그것만 해도 큰 도움이었다.
50만 달러 안팎인 투자비는 대부분 대출로 해결했다(남매는 투자금액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밝히지 않았다. 기자의 추산이지만 진실에 가까울 듯). 다행히 캐나다 금융계에서 치과의사에 대한 신용도가 낮지 않은 덕을 봤다.
성환씨가 욕심 부린 게 하나 있다. 이른바 치과병원 의자인 덴탈체어는 대당 보통 1만 달러 안팎. 그러나 독일제 트레노라는 종합체어를 한 대 덜컥 들여놓았다. 무려 10배인 10만 달러.
“아마 온타리오에선 최초인 것 같아요. 젊은 치과의사가 이런 모험쯤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라며 자신있게 웃었다.
지난해 10월13일 ‘베이뷰레인 덴탈’ 문을 열었다. 원장은 오빠인 성환씨. 장은씨는 부원장 격. 환자는 한인이 약 40%, 중국계 20%, 기타 40% 정도. 이미 BEP(손익분기점)는 넘어섰다.
이들은 노스욕종합건강센터에 또 하나 치과의원을 준비 중이다. 새로운 곳에선 장은씨가 원장이고 성환씨가 부원장을 맡을 예정. 두 군데서만 일하는 게 아니다. 성환씨는 이밖에도 토론토 다운타운과 미시사가·볼튼 등 6곳에서 파트타임 잡을 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으로도 가볼 계획이다. 메인주 포틀랜드에 선배가 치과의원을 개원했는데 그곳에서도 한 달에 한 번 와달라고 부탁했단다. 성환씨는 3월부턴 그곳으로도 진출해볼 참이다. 장은씨 역시 4군데 이상에서 일한다.
투자와 돈 관리를 어떻게 할까? 장은씨는 원칙을 말해줬다.
“두 사람 돈을 섞는 일은 없습니다. 저는 여기서 월급을 받고 새로운 곳에선 제가 오빠에게 월급을 주게 될 겁니다.”
베이뷰레인 오피스는 전액 성환씨가 투자했고, 노스욕 오피스는 장은씨 몫. 미혼인 남매는 부모님과 함께 산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남매가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 부모님이 곁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한다.
장은씨는 한인장학재단에서 후배들을 위한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또 성환씨는 젊은 치과의사들 모임이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지금은 6명밖에 모이지 않지만, 현재 200명 정도로 추산되는 한인치과의사들이 모임에 많이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남매에겐 꿈이 있다. 먼저 성환씨.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요 아마 치과의사 출신 영화감독이 나올 수도 있을 거예요.”
장은씨도 “아마 오빠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며 머리를 크게 끄덕였다. 장은씨는 이 말을 전했다. “손으로만 일하면 노동자, 손과 머리로 일하면 장인, 손과 머리와 가슴으로 일하면 예술가.” 장은씨는 치과의사야말로 예술가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남들도 인정해주는 예술가 치과의사가 꿈이라고 한다. (조영권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