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맞추기 퍼즐에서 마지막 조각 하나를 끼워 맞췄다고나 할까요? 딸의 가세로 완벽한 팀을 이루게 됐죠.”
‘권부동산팀’이 권종근(존·58)·권무숙(헬렌·53)씨 부부와 딸 소진(루시·28)씨의 ‘3인 체제’로 변신한 것은 지난해 9월의 일이다. 소진씨는 ‘팀’에 합류하기 전까지 미국의 금융업체(캐피털원)에서 입사 3년 만에 지역부사장까지 초특급 승진을 거듭했던 재원.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늘 자신만의 비즈니스가 하고 싶었던 그는 엄마의 적극적인 권유로 부동산업계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고.
“소진이를 가진 채 부동산중개인 공부를 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공교롭게 딸도 같은 길을 걷게 됐네요.” 엄마 무숙씨의 말이다.
오는 4월 출산을 앞두고 있는 소진씨는 원래부터 세일즈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단다. 고교 여름방학 때 경험삼아 토론토스타 영업직에 자원, 하루에 7건의 정기구독을 따내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고. 소진씨는 미국으로 가기 전인 2006년 ‘혹시 몰라’ 부동산중개인 자격증을 따둔 상태였다.
엄마는 소진씨가 18살 때부터 중개인 자격증을 딸 것을 종용했다. 파트타임일이라도 시킬 요량이었다. 그러나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행을 택한 딸은 직장에서 인정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늘 ‘자기사업’을 갈망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웨딩 관련 비즈니스를 꿈꾸기도 했다.
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엄마는 “부동산중개업도 자기사업이나 마찬가지다. 엄마아빠가 네 꿈을 이루는 데 위해 필요한 노하우들을 도와주겠다”며 중개업에 뛰어드는 것을 생각해볼 것을 권유했다. 고심하던 소진씨는 결국 잘 나가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캐나다로 돌아왔다. 지난 9월의 일이었다.
가족 중 부동산업에 가장 먼저 뛰어든 건 무숙씨였다. 87년, 이민온 지 5년 만의 일이었다. 우연히 남편 종근씨가 한 설명회에 다녀온 뒤 부동산중개인이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한 것이 계기였다. 집 한 채를 팔면 ‘무려’ 6%의 수수료를 받는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던 것. 당시만 해도 부동산경기가 정점이었던 데다 한인중개인도 별로 없어 손님이 넘쳐났다. 줄을 서서 무숙씨의 사무실 앞에서 기다릴 정도였다. 한국에서 컴퓨터 관련 일을 하다 기술이민, 스코샤은행과 IBM 등에서 근무했던 남편 종근씨는 아내의 ‘벌이’에 놀라 2년 뒤 부랴부랴 중개인의 길로 따라나섰다.
부부로서, 동료로서 24시간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이들은 서로를 어떻게 평가할까. 무숙씨가 “남편에게 일을 맡겨 놓으면 통 안심이 안 된다”며 눈을 흘기자 종근씨는 “사실 나는 일을 벌이는 쪽, 아내는 수습하는 쪽”이라며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이는 거꾸로 서로의 장점이기도 하다. 대인관계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종근씨와 꼼꼼하기 이를 데 없는 무숙씨는 생활에서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에 있어서도 완벽한 궁합을 과시한다. 종근씨는 “역할분담이 철저한 우리는 진짜 환상의 콤비”라고 자랑한다. 이들에게 당연히 모든 손님은 '내 손님'이 아닌, '우리 손님'이다.
그렇더라도 부부가 함께 일하는 데 애로사항은 없을까. 두 사람 모두 사업적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상대방의 고집과 간섭을 들었다. 하지만 결국은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만큼 늘 원만하게 해결되곤 한다. “난 마누라를 100% 믿는 사람”이라며 종근씨가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종근씨는 워낙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인맥네트워킹’에 주력하고 빈틈없는 처리가 필요한 일들은 무숙씨의 몫이다. 그래도 일을 하다보면 ‘이민 1세’로서의 한계를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최근 들어 하이테크의 필요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은퇴도 생각할 나이가 됐고요.” 딸 소진씨를 ‘스카웃’해온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일을 하다 정말 ‘고급영어’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미국에 살고 있던 소진씨의 도움을 구한 적도 많았다.
부부에게는 딸 소진씨 외에도 아들 용혁(저스틴·22·대학생)군이 있다. 아들에게도 중개인이 되는 것을 권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솔직히 딸과는 달리 내성적인 성격이라 이 직업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엄마의 대답이 돌아온다.
부부는 중개인 생활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으로 ‘형편이 어려운 손님에게 가까스로 대출까지 알선해주고 이후 가게가 잘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를 꼽았다. 특히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가게 하나를 팔면 마치 딸을 시집보내는 느낌이 든다고.
“과거 투자이민자들이 몰려올 때는 버스를 대절해 동네투어까지 했어요. 빌더들이 놀라 줄을 대려고 경쟁을 하기도 했죠.” 종근씨의 콧수염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이유를 묻자 “과거 한국에서 억제당한 게 많아 그에 대한 반발로 기르게 됐다”고 말한다. “워낙 개성이 강하고 하고싶은 건 꼭 해야 하는 성격”이라고 무숙씨가 옆에서 거든다.
온타리오주에서 그야말로 안 가본 데가 없다는 이들 부부는 자녀들을 차에서 키우다시피 했다. 모텔비를 아끼려 온 가족이 차에서 밤을 보낸 적도 많았다. 딸 소진씨에게 당시의 기억을 묻자 한마디로 “추웠다”고. 악착같이 일하다보니 ‘한국사람에게 리스팅하면 백발백중’이라는 소문이 나 비한인 손님도 많이 연결됐다.
무숙씨는 “중개인이라는 직업은 삶의 방편이자 소중한 배움터”라고 말한다. 원래 사람을 쉽게 사귀는 체질이 아니었지만 만남과 대화를 통해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됐단다.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반면교사로, 좋은 사람들은 삶의 본보기로 삼게 됐다.
딸 소진씨는 ‘2세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중개인으로서 경험을 쌓아갈수록 어깨너머로 엄마아빠의 비즈니스 원칙을 보고 배운 게 큰 도움이 된다는 그는 “어렸을 때는 항상 밖에 있는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뿌듯하고 고마웠다”며 “최선을 다해도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는 부동산업계에서 이렇게 자리를 잡은 부모님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엄마 무숙씨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아이들을 놓고 다녔던 게, 부모를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에 곁에 없었다는 게 제일 미안하다”며 “그런 면에서 부모를 이해해주고 또 부모가 걸어온 길을 함께 선택한 딸에게 너무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23년 전 뿌린 씨앗이 이제 열매를 맺고 있잖아요? 지금 씨앗을 뿌리려는 딸에게 모든 ‘농사기술’을 전수해주는 게 우리 부부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일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