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주체성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내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남의 삶까지 내가 좌우하면 금상첨화(錦上添花). 심리학자들은 이를 ‘자아실존형 주체성(ego-existence subjectivity)’이라 부른다 한다. 별거 아닌 말을 전문가들이 망친 사례다. 쉽게 말해 세상을 내 뜻대로 살 때 행복하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예를 들어 행렬 맨 앞에 서야만 뿌듯한 기쁨을 느끼는 부류가 있는 반면 그저 조용히 줄 뒤에서 따라가며 안정을 음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지 않고 스스로 주인임을 확인하며 행복을 느끼는 건 인지상정인 것 같다.

젊은이들 의식조사를 봐도 그렇다. 연봉은 많이 받지만 눈치에 찌들어 가슴 졸이는 직장인보다 돈은 적게 벌어도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직업을 더 선호한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기 때문이다.

조그만 기업을 경영하는 필자의 친구가 몇 년 전 들려준 얘기. 자신은 삼성전자 최고경영자가 부럽지 않다고 했다. 자기 회사보다 1천 배나 큰 삼성전자의 CEO는 이건희 그룹회장의 지시를 받지만 자기는 조직의 최고 책임자로 혼자 결정하고 지시를 하고 책임을 지기 때문이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과연 친구의 얼굴엔 당시 삼성전자 최고경영자이던 윤종용부회장에게서 찾을 수 없는 자신감과 카리스마가 넘쳐흘렀다. 이처럼 삶에 대한 통제감, 다른 말로 자아주체성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하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이것도 넘치거나 비틀리면 문제가 된다. 더욱이 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주변 모든 이들이 불행해진다. 최근 토론토 한인단체들 사이에서 나타난 일련의 “나 아니면 안 된다”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지도자들이 자리를 떠나려 하지 않는 이유는 대개 두 가지다. 하나는 내려오는 순간 감춰졌던 잘못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게 두렵고 또 하나는 앞에서 말한 자아 주체성이 비틀렸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비틀린 자아 주체성을 ‘통제의 착각’이라 부른다. 본인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 모두를 자신이 통제하고 있다고 여기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이건 병이다. 병이 깊어지면 우연히 이뤄지는 일까지도 자기가 컨트롤하고 미래의 일도 자기 뜻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나 없으면 이 조직은 돌아가지 않는다”고 철석같이 믿는 리더에게 아무도 “당신 없이도 돌아간다”고 말하지 않는다. 착각이 발전하면 그 리더는 스스로 전지전능자가 된다. 물론 가슴 깊은 곳엔 “나 없이도 이 조직이 잘 돌아가면 어쩌나”라는 불안감이 깔려 있다.

더 나가면 “이 조직은 내가 손을 놓는 순간 파탄날 것” 같은 확신에 사로잡힌다. 이 단계에 이르면 그 자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걱정 때문에 내려오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리비아의 ‘영원한 지도자’ 카다피처럼 민주화요구를 하는 시민들에게 전투기 폭격을 감행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아무리 순수한 지도자라도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통제의 착각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통제의 착각을 통제할 시스템이 중요한 것이다. 서구 민주주의는 400년 이상 시행착오를 거쳐 이런 시스템을 확보했고 한국도 수십 년 항쟁의 대가로 이것을 얻었다. 그리고 지금 중동은 피를 흘리며 이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나 없으면 절대 안 돼”라는 분들에게 들려줄 말은 단 하나. “당신 없이도 모든 것은 잘 굴러간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당신이 없어야 오히려 더 잘 돌아갈 것”이라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다.

‘내 뜻대로’가 ‘내 맘대로’, 더 나아가 ‘제 멋대로’라는 통제의 착각으로 발전해선 곤란하다. 당사자야 행복하겠지만 나머지 모두가 불행해진다. 더 이상 한인사회에서 공공단체를 ‘멋대로’ 끌어가 모두를 불행행에 빠뜨리는 일이 없어야겠다. 특히 눈 똥그랗게 뜨고 1세 어른들을 바라보는 우리 후세들을 위해.

조영권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