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류직하 삼천척(飛流直下 三千尺).

폭포수가 아래로 곧게 3천 척을 떨어진다. 당나라 시인 이백이 서기 726년 장시성(江蘇省)에 있는 여산폭포를 바라보며 읊었다는 시다. 1척은 1자이니 33cm, 3천 척이면 얼추 1천 미터는 된다. 나이아가라는 겨우 52미터인데 20배 높이라니 엄청나다.

얼마나 장엄하면 당대의 시선(詩仙) 이태백의 시심을 사로잡았을까. 호기심에 인터넷백과사전을 뒤졌다. 산 중턱에서 흘러내리는 50미터짜리 3단 폭포였다. 수량은 나이아가라나 이과수폭포에 비하면 갓난아이 오줌줄기에도 못 미치는 수준.

이건 ‘뻥’도 아니다. 이백의 다른 시 ‘추포가’를 보면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이라 했다. 덧없이 늙어 어느덧 흰머리가 3천 장이나 자랐다는데 1장이 3.3미터이니 3천장이면 1만 미터다. 문학적 과장법이 이 정도는 돼야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감히 트집 잡거나 흉내 내지 못할 터.

평범한 한국인들이 일상에서 무심코 던지는 말을 보면 이태백 못지않다. 하루에도 수없이 목숨이 오락가락 한다. 배고파 죽겠고, 춥거나 더워서 죽겠고, 화가 나서 죽겠고, 보고 싶어 죽겠고, 우스워 죽겠고, 심지어 좋아서도 죽는다. 가장 심각한 것은 “심심해 죽겠다”는 상태. 실제 심심해서 죽기도 하는 모양이다.

지난봄 잡지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역학(疫學)관련 국제 의학전문지에 비슷한 논문이 실렸다는 기사를 읽은 적 있다. 만성으로 지루함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힘들어도 활기차게 사는 사람보다 수명이 짧다는 내용이다. 직업이 신통치 않거나 운동을 별로 하지 않는 사람들,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 가운데 심심해서 죽는 일이 많다고 한다. 특히 젊은 층 여자, 욕구불만에 싸인 중년남성 가운데 심심해서 병을 얻는 이가 많고 극단적인 경우 자살이나 사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심심해서 그랬어’란 책까지 있는 것을 보면 예삿일은 아닌 것 같다. 지난 11월 말 한국에서 있었던 일. 40살 남성이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친 75세 할머니를 넘어뜨리고 발로 차서 숨지게 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현장을 다시 찾았다. 경찰에 잡힌 그는 할머니를 발로 왜 찼는지, 그곳을 왜 다시 찾았는지 묻자 대답은 간단했다. “심심해서.” 이밖에도 ‘미치도록 심심한 자’들이 대형 사고를 친 사례는 부지기수다.

이들 반대편엔 ‘바빠 죽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엔 하고 싶은 일, 꼭 해야 할 일, 보람 있는 일들이 하고 많은데 짬을 낼 수 없어 못하는 이들이 더 많다. 개인 취미생활로 시간이 모자랄 수도 있지만 대부분 먹고 사는 일에 매달려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게 교민사회 현실이다.

냉정하게 말해 심심해서 죽는다면 개인사정으로 치부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심심해서 자신은 물론 주변까지 파멸로 이끄는 경우다. 먹고 사는 일에 바빠 죽을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걸 말한다. 지금 토론토 한인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에게 권한다. 혹시 심심해서 애꿎은 이웃까지 함께 구렁텅이로 이끄는 일은 없는지, 따분한 이민생활의 욕구불만을 엉뚱한 곳에 쏟아 놓는 것은 아닌지, 개인의 심심풀이를 위해 공동체 파괴에 가담한 건 아닌지 자신과 주변을 한번 세심하게 돌아보았으면 한다. 한 해를 아름답게 마무리해야 하는 요즘 하도 한인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분들이 많아 한번 권해보는 얘기다. 공동체를 세우기는 힘들어도 망가뜨리는 건 순식간이면 가능하다.

그리고 내친 김에 제안한다. 뜻있는 일에 함께 목숨 걸어보자. 우리 공동체를 바로 세우고 새롭게 창조하는 일에 죽을 만큼 바빠져 보자. 그리하여 우리 후세들이 부모세대가 만들어 놓은 한인사회를 보며 “좋아 죽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해보자.

이렇게 소박한 꿈이 이태백의 과장이이나 희망사항이 아닌 다들 가슴으로 공감하는 현실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조영권 편집국장


후기: 칼럼쓰기를 끝낸 직후 노인회 소식을 들었다. 정상적으로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한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바른 한인사회를 위해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 실협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