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자가 다가 왔는데 시선도 주지 않고 대꾸하는 리셉셔니스트나 손님이 서비스를 기다리는데 못 본 척 하면서 동료들끼리 대화를 계속하는 서비스직원, 한 손님이라도 자기 카운터에 오는 게 싫은 항공사 직원 등 기분 상하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모두들 회사가 망하기를 재촉하는 부류들이다.

대소 기업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안감힘을 쓰는 요즘 같은 경제상황에서 볼 때 도저히 용납못 할 ‘공산분자’들이다. (고 장기영 한국일보 사주는 “이런 사람들은 대한민국 회사가 하루빨리 망하기를 바라는 공산당원들이나 같다”라고 말했었다.)

최근 갑자기 LA에 가느라고 에어캐나다를 탔다. 토론토피어슨공항 카운터 앞에서 장시간 줄을 섰다가 비행시간이 늦어지자 우리는 별도의 카운터로 안내됐다. 마침 먼저 기다리는 여행자가 있었다. 여행자는 체크인이 끝난 게 분명한데 항공사사원과 말을 계속 이어갔다. 두 여인의 대화는 뒷사람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 눈치였다. 아마 여인들의 영원한 주제 옷과 핸드백, 액세서리 등 잡다한 일상생활 문제로 연결되는 것 같았다.

캐나다에서 40여 년 간 몸에 익힌 줄서기 인내로 참았다. 시간은 흘러 앞서 섰던 일반 줄의 여행객들이 체크인을 먼저하는 정도가 되자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먼저 줄에 그냥 서 있었을 것을. 치미는 화를 누르며 후회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다소 위안이 된 것은 옆 카운터 줄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일단의 가족들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특별안내된 이들은 산더미같은 짐과 함께 칭얼거리는 어린 아이들마저 있었다. 비행기를 놓칠 지경인지 부모들은 속이 타는 게 분명했다. 그래도 항공사 직원은 어쩐 일인지 바쁠 게 없다는 모습으로 유유히 앞 손님을 체크인했다.

마침내 인내로 버틴 우리를 맞은 여직원은 미소띈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상식 밖으로 오래 기다리게 한 데 대한 사과라든가 위로의 말은 실종. 능청스럽군. 그러면서 미소를 보여? 안면몰수의 고단수 아닌가. 여인은 친절했고 우리가 못 알아들을 것을 염려한 듯 말조차 천천히 했다. 급한 것은 댁의 사정. 나는 급하게 일할 이유가 없다는 태도. 손놀림도 입놀림처럼 슬로우 모션이었다. 공항직원이 어떻게 이렇게 일할 수가... 이런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자판을 몇 번 누르더니 보딩패스를 인쇄하려고 10여 미터 떨어진 프린터까지 다녀 왔다. 그 폼이 가관이었다. 홀쭉한 몸매가 마치 만삭의 몸처럼 완전 거북이였다. 그것도 한 번이면 족하고도 남을 것을 두 사람 보딩패스를 핑계로 프린터까지 두 번이나 왕복했다. 프린터를 카운터 즉석에서 빼내는 것은 이젠 사치인가보다.

가만히 보니 분명히 이 미모가 옆 카운터 사원과 지연경쟁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손님을 늦게 처리하는데 왜 내가 더 빨리 처리? 보수는 같은데. 어쩌면 이들은 일을 되도록 천천히 처리하기로 미리 짰는지도 모른다. ‘빨리빨리’ 철학의 한국직원들 같으면 불과 몇 분이면 기분 좋게 처리할 일이었다.

“이러고도 에어캐나다가 망하지 않을 재간이 있나” 전에 어디서 들은 말이 머리를 스쳤다. 캐나다의 대표 항공사 에어캐나다가 파산 일보전의 위기에 처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것은 수긍이 갔다. “정부가 구제금융 주지말고 파산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어느 항공전문가가 여러 번 말한 것이 이해가 갔다.

고객은 직원들에게서 인간성을 반납할 정도의 신속성을 요구할 수는 없다. 종업원은 누구의 하인이 아니므로 인간존엄은 일터에서도 어떤 경우에든지 유지돼야 한다. 그러나 고객에게 불쾌감을 줄 정도로 상식을 벗어나서 늑장을 부리거나 불친절하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택시기사도 넥타이를 맨 사람이 팁을 더 받았다. 주유소 직원도 흰 까운을 입고 손님 이름을 부를 때 매상이 올라갔다는 통계가 있다. 배리에서 음식점을 하다가 피터보로에서 커피점을 경영하는 L씨는 “손님마다 반겨주고 가족 안부를 묻고 뭐래도 하나 더 주니까 매상이 두 배가 됩디다.”라고 한인상수상식에서 말했다. 이 모든 방법은 하찮은 손님이라도 존경스럽게 인간대우할 때 업자도 같은 대우를 받고 사업은 번창한다는 원리에 다름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