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 홍콩을 수비하던 캐나다군 2천여 명은 성탄기분에 들떠 있었다. 바로 18일 전 7일, 일본은 진주만을 폭격하고 미국에 전쟁을 선포해서 긴장은 있었지만. 이 기회를 노린 듯 일본군은 순식간에 홍콩으로 물밀 듯 밀려오자 캐나다군은 모두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일본안의 수용소로 보내진 이들은 종전까지 4년간 인간 이하의 학대와 석탄광산 노역, 병마에 시달렸다. 종전까지 약 1천명이 영양실조 아니면 폐인이 됐다. 250명은 수용소에서 죽었다. 포로에 관한 국제조약의 철저한 외면이었다. 일본은 이 사실을 계속 부인하다가 마침내 사실을 인정, 지난 8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보상얘기는 없었다. 그러나 사과를 받을 장병들은 이미 많지 않았다. 위안부 할머니들처럼 상당수가 이미 고인이 된 것이다. 어떻게 캐나다는 마이동풍, 우이독경 식의 귀머거리 일본정부의 사과를 받아냈는가. 그것은 관민이 일체가 되어 끈질기고 일관성 있게 주장하고 요구한 결과로 알려졌다. 일본정부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코앞에 갖다 대도 못들은 척, 못 본 척 하는데 도가 튼 집단인데도 결국 두 손 든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 ‘할머니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더욱 분통이 터졌다. 한편으로는 “계속 노력하면 캐나다처럼 언젠가는 사과를 받아낼 것이다”하는 기대가 커졌다. 다만 관이 지금처럼 철저히 외면하지 말고 어느 정도 나서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오타와 주재 한국대사관에서는 일본의 홍콩포로 사과까지의 과정을 알아보기를 바란다.
독일은 어떤가. 히틀러 나치정권에 의해 살해당한 유태인 6백만 명에 대한 보상을 절대로 외면하지 않았다. “정권이 다르기 때문에 보상은 없다”고 발 뺄 수도 있는데 처음부터 인정하고 사과했다. 독일 수상이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가서 무릎 꿇고 묵념하면서 참회의 모습을 보인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런 겸허하고 진솔한 모습은 오히려 세계여론에 감동을 주었다. 일본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태도였다.
한 때 나는 새도 떨어뜨릴 기세였던 나치 독일군이나 동조자 이태리군이 점령지역의 여인들을 잡아다가 조직적으로 성노예로 만들어 젊은 군인들의 성욕을 해소 시켰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점령지역에서 강간을 자행하고 전리품을 약탈했다는 얘기도 없다. 잡힌 포로들을 학대하고 인체실험을 했으며 더구나 굶겨 죽였다는 예는 과문인지 듣지 못했다. 물론 나치는 유태인을 짐승으로 치부했으므로 그들을 생체실험에 쓰고 그들 몸에서 나온 지방질로 비누를 만들고 머리털로 담요를 만들기는 했다. 일본은 상부의 지시로 군부대가 조직적으로 한인, 중국인들을 잡아서 생체실험을 했다. 바로 하얼빈의 731부대였다. 만행은 어디서나 자행되었으나 한쪽은 철저히 사과하고 재발방지에 최선을 다하는 데 다른 한쪽은 철저히 안면몰수다.
더 속이 터지는 것은 이런 사실에 눈감는 한국 정부의 처사다. 지금까지 역사를 보면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한 항의와 침묵의 정도가 달랐다. 그동안 한국정부는 할머니들과 동족인지, 아니면 일본인 후손인지 모를 정도로 더러운 오물을 본 듯한 태도를 보였다. 최고통치자가 이 모양이니 일본정부가 미쳤다고 사과하겠는가. 우리가 캐나다에서 아무리 시위하고 규탄해도 쇠귀에 경 읽기에 지나지 않을 이유다. 일본은 “당신네 대통령이 바뀌어 보라, 새 대통령은 수요집회 마져 금지할지 모른다”고 느긋이 기다릴지 모른다. 뒤늦게 이명박 대통령은 18일 한일정상회담에서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본격 거론했다. 만시지탄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일본소설가 줌페이 고미카와의 대하소설 ‘인간의 조건’은 말짱 허구였던가. 소설에는 일본군이 난징에서 중국인들을 끔직하게 학살하는 장면들이 있다. 그래도 그런런 일 없다고 시침떼는 일본정부.
“65년 김종필-오히라 메모에 의거, 대일 청구자금에서 이미 보상됐다”라는 일본의 주장에 일리는 있다. 당시 박정희 혁명정부가 급박한 재정지원을 위해 할머니, 생체실험, 한인 강제징병, 히로시마 원폭 때 죽은 한인들에 대한 보상을 눈감아 주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렇다 해도 후에 새로운 진실이 나오면 다시 소급해서 따져보아야 할 것 아닌가. 김-오히라 메모는 영구불변의 진리요, 만병통치 치료제가 아니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 어떤 사안에도 내놓을 수 있는 마법의 메모가 아니다.
지난 14일 토론토, 오타와 교민, 중국인들, 브램톤의 캐네디안 학생 등 4백 명이 오타와 일본대사관 앞에서 데모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그러나 캐나다 최대의 한인거주 토론토에서 불과 2백 명 정도가 참가했다는 것은 결코 자랑스럽지 못하다. 약 1천명이 참가했다고 하면, 아니 자녀들의 역사 교육 겸 2천 명 정도가 참가했다면 최소한 캐나다 미디어에 주는 효과는 더 컸을 것이다. 수많은 단체장들은 다 감기가 들었는지. 아니면 계속되는 파티로 녹초가 됐는지. 종교인들은 설교준비에 너무 바빠서? 한인교사연합회는 자녀들에게 한글만 가르치는 단체인가. 이번 같은 좋은 기회의 역사의식 교육은 간과하고.
제일 섭섭한 것은 연아마틴 상원의원이라고 시위자들은 입을 모았다. 유일한 오타와의 한인정치인은 시위에 얼굴도 내지 않았다. 아프다던가? 진짜 병색이 있어 보이는 중국계 올리비아 차우 연방의원은 잠시 나와서 연설까지 했었는데. 그런 면에서 말단 직원 1명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던 오타와 한국대사관의 태도도 유감스러웠다. 이런 시위에 참여하면 상부에서 ‘찍히는가’. 불참명령은 분명 없었을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