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9일 국제적 회계법인 딜로잇 앤드 투시(Deloitte and Touche)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무궁화의 집’ 구입자들에게 보냈다.

‘9월27일 온타리오주 최고법원의 명령에 따라 딜로잇 회사는 무궁화의집의 모든 자산을 접수하고 경영을 맡는다. 기록에 의하면 귀하는 아파트의 구입자다. 이를 증명하는 모든 서류를 딜로잇으로 보내달라.’

부사장 명의의 편지는 아파트구입자들에겐 놀라움 그 자체였다. 너싱홈, 즉 요양원과 아파트로 구성된 ‘무궁화의집’은 지난 3월부터 오픈되어 한인노인들의 입주가 시작되어 모든 난관은 끝났고 한인이 주인인 요양원/아파트가 생긴 것으로 믿어 의심되지 않았다. 12층짜리 건물은 보기에도 자랑스러웠다. 요양원에는 한인 간호사들이 있고 한인 의사가 있으며 한식이 제공된다. 표준어가 한국말이니 오직 좋은가. 60개의 침상이 차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가족이 요양원에 입원했다면 성한 가족들은 아파트에 입주, 요양원가족을 돌보기가 쉬웠다. 입구부터 호화롭고 사치스럽지는 않지만 입원자도, 거주자도, 근로자도 모두 뿌듯한 주인의식을 가졌다. “이것은 우리 것”이란 긍지가 말없이 그들 모두에게 젖어 있었다. 주정부가 준 200만 달러와 ‘하면 된다’는 투지만으로 시작한 공사였다. 빈주먹이지만 겁이 없던 때였다. 동포들은 건축에 뛰어든 윤정림 사무총장의 인간성과 신의를 믿고 아파트를 사 주거나 공사비를 빌려 주었다.

원래 양로원 건립은 70년대 말부터 논의됐으니 40여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개장을 고대하던 많은 노인들이 한인양로원 입주의 한을 못 풀고 저승에 갔다. 이처럼 지각도착이지만 무궁화의 개장은 2011년 최대의 한인 자랑거리였고 한인이민사에서 크게 기술해야 할 쾌거였다. 특히 윤 총장 부부의 노고는 한인상 수상자가 되고도 남는다. 그와 함께 20여년 이사장을 맡은 윤승렬씨는 물론 한때 이사를 지낸 ‘죄’로 현금기증, 아파트 강제구입을 피할 수 없었고 현재는 건축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한 유승민, 이규숙, 김명규도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

영광이 수치로 변하기까지는 6개월이 걸렸다. 2차모기지 상환금을 3개월여 갚지 못해 채권자에게 건물을 접수당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아무리 원통분통하고 억울하다고 울부짖어도 1차모기지 1,500만 달러 갚기에 온통 정신 쓰다가 당한 기습이었다. 채권자는 접수권을 수순에 따라 냉정하게 행사했을 뿐이다.

지난 한 해 한인사회가 당한 또 하나의 치명적 수치는 온타리오실업인협회의 내분과 이로 인한 법정관리인 ‘모건 앤드 파트너스’의 경영권 인수와 회장선거 감독이다.

돈 있는 곳에 말썽이 있다고도 하고, 한인들은 아직 협회나 조합 같은 덩치 큰 조직을 평화롭게 운영할 능력이 없다고도 흔히들 말한다. 자기비하인가, 진실인가. 토론토 한인사회의 중추이며 해외 교민사업자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던 실협은 회장에 따라 임기 중 분규가 종종 있었지만 이번 강철중 회장단처럼 취임 1개월 후부터 고소다, 맞고소다, 제명이다, 축출이다, 등으로 2년 임기를 소란으로, 고소로 시종한 회장단은 38년 실협 사상 처음이다. 모든 분규가 회장 1인의 잘못이고 책임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배가 가라앉는 데 대한 책임은 이유야 어떻든 선장에게 있듯이 단체가 제 역할을 못한 궁극적 책임은 단체장이 지는 것은 당연하다. 강 회장 개인의 성격, 반대자도 끌어안는 포용력과 아량의 부족 등이 자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다.

분규가 법정소송으로 비화하던 끝에 지난 11월25일 받은 판결은 “당신네들 다 물러나라. 이제부터는 법원이 임명한 관리자가 대행 관리한다”였다. 지금까지의 한인 운영자들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협회원만의 일이 아니라 한인 전체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한인들은 협회의 선거를 공정하게 치를 능력이 없고 이를 감시·감독할 한인단체도 없다는 뜻 아닌가. 그러므로 이것은 동포사회에 큰 쇼크로 다가왔다. 협회가 한인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기

때문에 더욱 놀라운 소식이었다. 이젠 동포사회가 나서 더욱 관심을 갖고 좋은 결말을 위해서 지혜를 합칠 때, 모든 한인들이 책임을 통감하고 고통을 나눌 때다. 대대손손 음미하고 각성해야 할 역사적 사건이다.

실협은 제조업체나 도매상과 흥정해서 좋은 딜을 만들었고 회원들에게 리베이트를 과외수입으로 주었다. 장학금제도를 확립, 회원자녀들의 진학을 돌보았다. 그뿐 아니라 한인사회의 대소 단체에 매년 많은 지원금을 주었으며 여러 동포행사를 현금이나 물자로 지원했다. 그러므로 실협회장이 한인행사에서 늘 어른으로 대접받는 것은 당연했다. 늘 돈 없는 한인회장보다 돈 있는 실협회장이 내용면에서 우대받는 모습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언제부터인지 사라졌다. 행사장에서 실협회장 얼굴 보기가 힘들자 이젠 그의 지정석과 명패는 아예 만들어 지지 않는다. 협회 안팎에서 실협회장의 존재는 소멸 중이며 사람들은 실협회장 소리만 들어도 조건반사적으로 협회 안의 내분을 연상하게끔 됐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1910년 일본군은 총 한 방 안 쏘고 대한제국을 합병했다. 합병이란 운영능력이 없는 국가, 단체를 힘이 센 집단이 맡아서 운영하면서 단물을 다 빼먹거나 수고비를 왕창 받아내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국치일(國恥日)은 나라가 수모를 받은 날이다. 한국으로 말하면 1910년 8월29일. 일본식으로 말하면 한일합방이요, 우리식으로 말하면 경술국치가 시작된 날이다.

세모를 맞아 을사늑약(1905년의 을사보호조약)과 경술국치가 생각나는 것은 2011년이 토론토 동포사회에겐 민족적 모욕의 해였기 때문이다. 민족적 자부심에 먹칠한 해다. 다른 민족이 이런 ‘경영권 접수’ ‘대리감독’ 소식을 들으면 “한국인이 별수 없지”하겠고 다른 지역의 한인동포들은 “토론토 역시 별 수 없군”하고 비하할 것이다. 한 단체는 원래 빈주머니로 시작했으므로 이해와 동정이 가지만 다른 한 단체는 권력, 이권, 아니면 그저 싸우기 위해 싸운 내부싸움으로 2년여를 지새다가 당했으니 자업자득이다. 도쿠가와 시대의 일본사람들 같으면 ‘셋부쿠(할복)’에 충분히 해당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