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는 다른 의사들에 비해 돈을 쉽게 버는 것처럼 보인다. 수술하거나 주사를 놓아주는 게 아니라 단지 말로 진료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밑천이 거의 들지 않는 ‘말 치료’에 비싼 진료비를 청구하는 것은 바가지를 씌우는 것처럼 비쳐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정신과의사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면 이런 생각은 사라진다. 정신과의사의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말을 진정으로 잘 듣기 위해서는 다년간 전문훈련과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태도를 쌓아야 한다. 정신과의사들은 이런 단계를 훨씬 넘어 환자의 말을 정신분석적으로 듣기 위해 자신이 시간과 돈을 들여 정신분석 치료부터 받아야 한다.
잘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 놓고 생각해보는 여유와 인내를 갖는 것이다. 자기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반복하는 게 아니라 “저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마음의 주파수를 맞춰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입을 다물고 남의 말을 듣는 것은 말하는 것보다 오히려 몇 배의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0초 이상 집중해서 경청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연구조사도 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다양한 주장은 넘치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에서 듣는 사람은 적다. 스마트폰, 트위터, 페이스북, 이메일, 인스턴트 메시징 등 별의별 통신수단이 판을 치지만 대부분 듣기가 아닌 말하기 위해 사용된다. 현대인들은 지구온난화보다는 말의 공해에 더 신경을 써야할 지경에 있다.
몇 년 전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된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에는 ‘1:2:3의 대화법칙’이라는 게 있다. 1분 동안 말하면 2분 동안 듣고, 그 2분 동안 최소 3번 이상 맞장구를 치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유창한 대화술보다는 경청과 상대방 인정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징기스칸은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며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는 명언을 남겼다.
공자는 이미 2,500년 전에 말에 대해 명쾌한 해석을 내렸다. 50이면 지명(知命)이요, 60에 이순(耳順)이라는 나이별 정의는 말과 깊은 연관이 있다. 지명은 자신은 아직 젊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늙어가기 때문에 나이의 한계를 알고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언행에 조심하라는 소리다. 50대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게 노인현상, 즉 말이 많아지는 것이다. 한 얘기 또 하고, 지나간 일에 입을 열면 끝이 없다. 남의 얘기에는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아 주변 사람들이 피곤해지게 마련이다. 50대 ‘젊은 노인’들은 자칫하면 젊은 층이나 노년층 양쪽으로부터 외면당할 수도 있다.
이순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무슨 소리를 들어도 소화해낼 수 있다는 뜻인데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대개 60을 넘으면 50대보다 말이 훨씬 많아져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기는 더욱 어려워지는 법이다. 하지만 경청훈련이 안 돼 있으면 사회에서는 물론 집에서도 어르신 대접을 못 받게 된다. ‘50이면 지명, 60에 이순’은 공자 말 중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말이라고 본다.
한번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게 3가지가 있다. 잃어버린 기회와 시위를 떠난 화살과 입에서 나온 말이다. 말은 곧 인격으로, 말로 상대방의 사람 됨됨이를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말 한마디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주먹을 쓰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말도 폭력으로 쓰인다. 오히려 주먹으로 맞으면 잠시 아플 뿐이지만 말로써 입은 마음의 상처는 두고두고 남는다. 말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말에는 감정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해가 바뀌면 대부분의 사람들들은 건강, 다이어트, 금연 등의 결심을 한다. 새해결심에 말 한마디 줄이기, 남의 말 한마디 더 듣기를 추가하면 어떨까. 말수가 줄어드는 만큼 문제도 줄 게 마련이며, 경청 횟수가 늘어날수록 주변에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들 것이다. 이것이 ‘새해 만사형통’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