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스마트폰을 마련했다.

놀잇감이 가득했다. 최근 한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이른바 ‘나꼼수’도 자유자재로 보고 들었다. 정치인들에 대한 원색적인 욕설과 육두문자, 풍자, 비꼬기… 통쾌했다. 한번 들으면 푹 빠져들 것 같았다. 아하, 이들이 모바일세상의 새 권력자로 군림하겠구나. 내 생각이 맞았다. 어떤 이는 나꼼수를 ‘희화(戱畵)권력’이라 명명했다.

이들에게 걸리면 국물도 없다. 아무리 힘 있고 돈 있고 잘나가는 자라 해도 간단한 말 몇 마디에 웃음거리가 되어 소셜미디어(Social Media)를 타고 빛의 속도로 퍼져나간다. 부스스한 머리에 텁수룩한 수염을 지닌 김어준이라는 이가 희화권력의 아이콘(icon)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스스로 시정잡배라 칭하며 몸을 낮추니 딱 뭐라 찍어서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국사회의 대세는 ‘불만’이라 한다. 성별과 세대를 가리지 않고 대중은 욕구불만에 차 있어 누구라도 찌르면 터질 듯 부풀어 있다. 희화권력은 바로 이런 세태를 꿰뚫었다. 잘난 사람들을 한낱 조롱거리로 전락시켜 대중에게 대리만족 또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불안요인을 한 단계 걸러준다는 점에서 사회를 건강하게 지탱해주는 청량제다.

더욱이 소셜미디어가 무엇인가. 인간본능인 표현의 자유, 그 중에서도 말하고 싶거나 듣고 싶은 갈망을 무한대로 충족시켜 준다. ‘말씀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를 실현해준 고마운 존재다.

빛 뒤엔 그늘이 짙은 법. 소셜미디어가 때로는 거짓과 확인되지 않은 진실, 불신을 엄청난 속도로 전파하기도 한다. 불신이 커지면 믿고 싶은 것만 골라서 믿는 편향(偏向)이 심화되고, 편향은 다시 소셜미디어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불신을 증폭시킨다. 악순환 고리다. 이쯤 되면 정상적인 정보는 뒷전에 밀리고 비틀린 소문만 빠르게 유통된다.

저널리스트이자 비평가인 에브게니 모로조프(Evgeny Morozov)는 저서 ‘넷 딜루전(the Net Delusion)’에서 인터넷시대의 허상을 통렬하게 파헤쳤다. 사이버 유토피아? 그건 신기루라고. 인권을 높이거나 보호하기는커녕 절대권력의 통제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너무 크다 했다.

또 다른 문제는 희화 세력이 이미 어느 누구도 손댈 수 없는 거대권력으로 성장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 권력을 에워싸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대부분 사회에서 약자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상실한 젊은이들이 대거 희화권력에 열광적인 응원을 보내고 반대편엔 돌을 던진다.

박수부대 눈엔 세상에 딱 2개 부류밖에 없다.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찬성하면 정의와 진보의 편이고 반대하면 악과 꼴통보수 편. 맹목적인 지지 아니면 설 땅이 없다. 희화화(戱畵化)의 위험과 문제점, 대안을 제시하는 순간 그는 악의 편으로 분류돼 길거리와 사이버 공간에서 무차별 포격을 받는다. 뜨뜻미지근한 지지자들마저 이들에겐 기회주의자일 뿐이다. 오히려 희화권력 입맛에 맞는 말만 골라서 아첨하는 진짜 기회주의자들이 정의의 사도로 둔갑하는 웃지 못할 광경이 펼쳐진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집단 사시(斜視)라고 악담을 퍼부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들이 처한 환경을 보면 그렇다. 현재는 답답하고 미래는 암울하다. 계층이동 사다리가 사라져버려 신분상승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에서 무엇으로 위안받을 것인가.

사람에게 목숨보다 중요한 건 희망이다. 하지만 ‘성역 없는 비판’이라 자화자찬하는 희화권력의 배설행위가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욕설과 비꼬기가 대중의 쾌변(快便)엔 도움을 줄지 몰라도 기초건강엔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희화화가 사회적 불만을 마비시키는 환각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비판의 격(格)을 스스로 떨어뜨려 사회진보의 장애물이 되는 건 아닌지….

필자가 더 걱정하는 건 한국정치 현실이 아니다. 소셜미디어의 확산과 함께 캐나다 한인사회에도 이 같은 현상이 여과 없이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재외국민 투표권까지 주어져 기름을 부은 꼴이다. 이미 한인사회 일각에서 소모적인 논쟁이 시작됐다.

한국에선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약자 중의 약자인 캐나다 한인사회에서 용이 나오긴 더욱 힘들다. 이민 보따리 싸서 태평양을 건널 때 당대에 거대한 꿈이 이뤄질 것으로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치 없는 한국정치 논쟁과 비꼬는 재미에 빠져 정작 중요한 이 땅에서 현재와 같은 신분이 자식세대로 대물림되는 걸 보고만 있을 것인가. 후세의 계층이동 사다리를 부모들이 걷어차 버리는 것은 아닌지… 필자만의 기우(杞憂)일까.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