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올해 1월19일 미국 뉴욕법원.

지구촌 경제계에 일대 교훈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카메라·필름 업계 지존(至尊)으로 군림하던 이스트만 코닥이 이날 미국 뉴욕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132년 역사가 한낱 물거품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하면 어떤 강자도 순식간에 풍비박산(風飛雹散)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이 회사 이사회는 기업의 미래를 위해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고 밝혔지만 과연 코닥에 미래가 있을까?

19세기 말 1880년대에 등장한 이래 코닥은 20세기 내내 세계를 지배했다. 사용하기 쉬운 필름과 카메라로 시장을 장악해 누구도 코닥의 아성을 넘보지 못했다. 코닥은 그러나 디지털시대의 도래를 보면서도 변화를 도모하지 않았고 아차 하며 변화를 시도했을 땐 이미 늦었다. 코닥이 내놓은 파산보호 서류엔 51억 달러 자산과 68억 달러의 부채가 기록돼 있다. 청산해 봐야 빚만 17억 달러 남는다는 계산이다.

장면 2. 2010년 10월 텍사스 오스틴 거리.

한 남성이 팻말을 들고 인도 위를 서성인다. 팻말엔 “나는 도둑놈”이란 말과 함께 본인 실명이 적혀있다. 길거리 행위예술이 아니라 실제상황이다. 이 남자는 미국 범죄희생자들을 위한 기금에서 25만 달러를 훔친 혐의로 기소돼 텍사스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돈이 회수돼 큰 피해는 없었지만 ‘공금횡령’이라는 범죄는 남았다. 판사는 정상을 참작해 실형 대신 창피함을 느끼도록 하는 이색판결을 했다. 이 남자는 6년 동안 주말마다 5시간씩 이렇게 서 있어야 한다.

두 장면의 연관관계는? 미래를 읽지 못하고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 공금을 제멋대로 써서 이웃으로부터 손가락질 받는다는 점에서 불현듯 토론토 한인단체들이 떠올랐다. 지금 실협과 노인회 등 대표적인 한인단체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이미 보도를 통해 익히 알고 있을 테니 반복할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못 다한 법(法)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한인사회를 처음 알아갈 때 왜 툭하면 소송을 들먹이는지 의아했다. 말로 해도 충분한 일을 왜 거액의 변호사비 들여가며 일을 키울까 궁금했다. 이 칼럼에서 여러 번 한인사회 일각의 소송만능주의와 소송협박으로 언론에 재갈 물리려는 시도를 질타하고 개탄했다.

최근 들어 참으로 걱정스러운 풍조가 한인사회에 독버섯처럼 다시 피어났다. 임자 없는 돈 원없이 써가며 그동안 미운털 박힌 사람들을 손봐주자는 분위기다. 21세기 디지털시대, 세상은 휙휙 돌아가는데 왜 아직도 공금만 보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소송일까?

일부 한인단체장들은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으면 꼭 변호사를 통해 경고서한을 보낸다. 편지 한 장이라고 우습게보면 안 된다. 변호사에게 글 몇 줄만 의뢰해서 보내는 데도 적게는 수백 달러, 많게는 1천 달러 이상이 든다. 당연히 공금이다. 실제 소송으로 가면 수만 달러는 가볍게 넘어간다. 다들 안다. 개인 돈이라면 이토록 쉽게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최근 사태가 악화된 실협의 경우 법정관리와 관련한 양측 변호사비만 해도 이미 10만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부대비용, 기회비용, 법정관리인과 선거감독관 인건비 등을 합하면 20만 달러? 현재로선 계산조차 불가능한 실정이다. 우유·초콜릿 팔아 1센트 2센트 피땀으로 모은 돈이 이렇게 허망하게 날아간다.

잃은 게 어찌 돈뿐이겠는가. 한인사회 전체가 당한 명예실추와 신뢰상실은 만회할 길이 없다. 또 아무 죄도 없는 우리 후세들이 못난 부모세대를 둔 죄로 캐나다 사회에서 열등민족으로 취급받는 것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것인가.

한국일보 인터넷 게시판에 네티즌의 이런 호소가 올라왔다.

“…모든 편의점들은 바코드 등 최신 시스템으로 바꿨는데 한인들 가게만 아직도 변한 게 없다. 우리 동포들이 운영하는 경제단체가 최대라고 자랑만 할 게 아니라 (중략) 몇 년 전에는 매우 한산했던 다른 대형 도매점엔 요즘 왜 손님이 몰리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새해에는 안정된 조직 속에서 미래를 걱정하고 만들어가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스위스 다보스에선 전 세계 정치지도자와 석학들이 모여 인류의 미래를 논의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열리고 있다. 올해 다보스포럼의 핵심이슈는 ‘디스토피아’다. 몇몇 빗나간 한인단체들로 인해 토론토 한인사회가 ‘디스토피아’로 전락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이제라도 세상변화를 읽고 미래를 모색하는 한인단체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소송을 그렇게 원한다면 공금에 손대지 말고 개인 돈으로 하라.

편집국장

* 디스토피아(dystopia): 부정적인 측면만 집약된 모두가 불행한 사회. 유토피아의 반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