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또는 반성문은 잦으면 안 된다.

지난해 7월 도미니크-스트로스 칸 IMF총재 사건과 관련, 필자는 칼럼의 오류에 대해 독자들께 사과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사건의 실체는 칸 총재가 호텔 여종업원을 성폭행한 게 아니라 반대로 꽃뱀에게 당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즈음 제주도를 다녀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대한 글을 실었다. 지금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일종의 해명이다.

최근 고국에선 제주도를 둘러싸고 논란이 불거졌다. 요지는 자연경관 선정주체인 ‘뉴세븐원더스재단(New 7 Wonders Foundation)’의 실체가 불분명하며, 대한민국이 거대한 사기극에 휘말려 몇 백억 원 혈세를 낭비했다는 것.

‘제주도 갈등’에 토론토까지 끼어들 필요가 있을까? 있다. 제주도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정운찬 전 총리가 이곳에 와서 캠페인을 독려했고 해외 한인사회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동포단체장들이 참여한 추진위원회까지 결성해 앞장섰다. 한국일보도 캠페인에 적극 호응해 관련 글과 기사를 여러 차례 게재하며 동포들에게 인터넷이나 국제전화로 투표하라고 권유했다. 따라서 당연히 독자들을 상대로 설명이든 해명이든 해야 할 처지다.

weber.jpg결론적으로 말해 제주도가 세계 자연경관으로 뽑혀 국가브랜드 가치가 올라가고 관광객이 몰려 이익을 가져온다면 더 이상 말싸움은 의미가 없다. 투입(投入)보다 산출(産出)이 큰데 그까짓 주관단체의 공신력이 대수인가. 정확한 통계로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제주도에 외국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 한다. 참 좋은 일이다.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 도청관리로부터 직접 들었다. 한 달 전화료만 1억 원(약 9만2천 달러)이 나왔다고 했다. 좀 많다는 느낌이었지만 1년 전화비 모두 합해봐야 12억 원. 선정되기만 하면 기대이익이 수백, 수천 배가 될 텐데… 이런 계산이었다. 그래서 넉넉하게 웃어줬다.

지금 알고 보니 적어도 전화비가 적어도 200억 원 이상, 일부 보도는 400억 원이라 한다. 국민세금으로 400억 원어치 전화를 걸어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됐다. 난 그래도 괜찮다고 본다. 선정결과가 발표되자 일부 경제연구소들이 경제 파급효과를 연간 1조 원 이상으로 추산했다. 1조 원은 책상물림들의 뻥이라 치고, 뚝 잘라서 10분의 1이라 하자. 그래도 1천억 원. 그것도 한 해가 아니라 매년 그렇다는 얘기다. 400억 원쯤 뿌렸다고 그리 손해나는 장사는 아닌 셈이다. 이게 필자가 자연경관 선정에 대해 기대를 버리지 않는 이유다.

당시 칼럼에서도 필자는 뉴세븐원더스재단의 실체에 대한 항간(巷間)의 의혹을 전했다. 그럼에도 이 캠페인에 적극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꿩 잡는 게 매’라는 속담으로 비유했다. 2007년 이 단체가 ‘세계 7대 불가사의 문화유적’을 선정할 때도 숱한 의혹이 있었지만 선정 이후 해당 유적지의 관광객이 연평균 40% 정도 늘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명분은 충분했다. 선정기관의 공신력 운운하면서 비아냥거리기엔 매력이 너무 커 보였다.

인도양의 조그만 섬나라 몰디브는 뒷돈을 요구하는 주최 측에 비도덕성과 부당함에 반발해 아예 후보에서 자진 탈퇴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필자는 생각이 달랐다. 몰디브 관리들이 손익계산을 잘못했거나 미래를 보는 눈이 없어 좋은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건 아닌지 갸우뚱했다.

이 아이디어를 실현한 뉴세븐원더스재단의 이사장 버나드 웨버가 과연 탁월한 사업가냐, 사기꾼이냐 묻는다면 난 ‘사기성이 있지만 아이디어만은 탁월한 사업가’라 대답할 수밖에 없다. 엄밀하게 따지면 그는 사기 친 적은 없다.

그러나 아무리 이익이 커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한낱 사기성 인터넷 사업가에게 놀아났다면 그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국격(國格)의 손상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 고국에에선 대한민국이 전화 수수료와 뒷돈을 노린 사기꾼의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에 걸려 ‘세계 7대 바보’가 되었다는 등 비판 목소리가 높다. 쏟아지는 험담을 일부 걸러내고 듣는다 해도 뒷맛은 개운치 않다.

더욱이 전직 국무총리가 위원장이 되고 현직 대통령의 부인이 명예위원장이 됐던 사안이다. 대한민국 국회까지 나서서 ‘제주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지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캐나다에서도 펀디만(Bay of Fundy)이 최종후보로 선정됐지만 연방차원에서 유력인사가 등장해 무슨 캠페인을 벌였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한국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동포들까지 한마음으로 적극 밀어줬다. “일부의 흠집내기”란 말로 대충 얼버무리고 덮을 일이 아니다.

자, 이제 정운찬 위원장과 대한민국 정부가 나설 차례다.


* 보이스피싱

전화를 통해 신용카드 번호 등 개인정보를 알아낸 뒤 이를 범죄에 이용하는 사기수법. 피싱(phishing)은 ‘개인정보(private data)’와 ‘낚시(fishing)’를 뜻하는 합성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