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들의 공통점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머리와 입과 손발이 따로 놀지 않았다. 머리 뜨겁게 생각하되 함부로 입 열지 않고, 일단 말을 꺼내면 지체 없이 실천하며 시작하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모습들을 취재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밑그림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허술하지도 않았다. 비즈니스가 설익은 열정과 조각지식으로 거저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열매가 그리 달겠는가? 그들의 성취 뒤엔 치밀한 계획과 도상연습, 그리고 거듭된 시행착오가 숨어 있었다.

닮은 꼴 또 하나. 그들은 어느 상황에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화려했던 지난날 추억에 젖어 현재를 망각하거나, 안락한 현재에 파묻혀 미래를 버리는 어리석음을 그들에게선 찾아 볼 수 없었다.

2. 먹고사는 문제

많은 독자들이 분에 넘치는 격려를 보냈다. 왜 진작 이런 기획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책도 있었다. 요즘 같은 때 먹고사는 것, 희망을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뭐 있냐는 하소연도 이어졌다.

경제가 정말 어렵다. 월가 천재들의 탐욕과 미국 경제관료들의 비틀린 자유주의 논리가 절묘하게 결합해 거대한 금융 쓰나미를 불러왔고 마침내 전 세계를 나락으로 몰아넣었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건 내가 다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리는 것. 한 줄기 희망만 잡을 수 있다면 지금의 고통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희망은 만병통치약이다.

희망의 끈을 보여 주는 일, 이게 바로 언론과 한인단체들이 할 일 아닐까. 특히 경제단체는 한인들 먹고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존재가치가 있다.

필자는 지난날 토론토 한인사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른다. 온타리오실업인협회가 그동안 뭘 했는지 알 바 없다. 문제는 지금이다. 앞으로 한인경제 살리는 데 앞장서겠다니 기대해볼 일이다. 하지만 길 아닌 길을 가면 그때는 추상같은 글채찍을 드는 데도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 그게 언론의 정도다.

3. 희망 깨는 자들

내친김에 한마디 더하자. 교민사회에서 밥 문제보다 더 절실한 게 정치적 욕구 불만인 것 같다. 서로 지지고 볶고 하면서 정치 욕구가 해소되고 생산적 담론이 확산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한인단체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

변방을 맴돌던 아웃사이더들에게 뭉개고 앉을 자리가 있다는 것, 큰소리 질러도 받아줄 곳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렇게 만만한 상대가 되어주는 것, 한인단체의 순기능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다섯 손가락에도 못 미치는 티끌 같은 일부가 10만 한인들 가슴에 대못질을 한다면 이건 문제가 다르다. 더욱이 몇몇의 편집증 때문에 대다수 한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등을 돌리고 싶은 상황까지 몰린다면 이만저만 심각한 일이 아니다.

다들 자신이 화내면 공분(公憤)이고 남이 화내면 성질 고약하다고 말한다. 필자도 지금 한인회를 두고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무엇이 옳고 누가 그른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최선 아닌 줄 알면서도 양비론적 사고를 버릴 수가 없다. 시시비비를 분명하게 가리는 것보다 관용과 포용이 더욱 절실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한 가지는 꼭 짚고 싶다. 내 돈 아니라고 동포들 코 묻은 공금으로 소송비 펑펑 쓰면서도 동포사회에 미안한 표정 한 번 짓지 않는다. 지금 한인회를 둘러싸고 벌이는 작태는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분노가 치솟는다. 이건 공분인가, 고약한 성격 탓인가.
다시 한 번 공허한 질문을 날려 본다. 나 혼자 밥걱정 없다고 10만 동포의 희망을 짓밟아도 되는가? 당신들 과연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