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었다.

토론토 한인사회의 얼굴이라 자처하는 한인회 지도자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20일 밤 쏜힐고등학교 강당에서 ‘케스윅에서 배우는 교훈’이라는 주제로 공개토론회가 열렸다.

행사 전부터 궁금증은 꼬리를 물었다. 왜 그들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는지, 왜 이런 중요한 토론회를 한인회가 주최하지 않는지, 왜 이런 행사가 한인회관에서 열리지 않는지....

이 토론회는 젊은 한인변호사들 모임인 한인변호사협회와 한국일보가 공동주최했다. 하지만 이 정도 의미있는 행사라면 당연히 한인회 주최로 한인회관에서 열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다시는 ‘인종차별’같은 터무니없는 대접을 한인들이 받지 않도록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한인회관은 누구를 위해 경치 좋은 곳에서 저 홀로 우뚝 서있는지. 물론 ‘한인학생 정당방위 사건’이 요크지역교육청 관내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같은 지역에서 토론회를 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한인회가 양보했다면 좋으련만.

부끄러웠다. 사건 해결 당사자인 요크지역 교육청 감독관과 경찰국 증오범죄담당관이 나와서 끝까지 성의있게 해명하고 답변하는 모습에 우리 자화상이 겹쳐졌다. 정작 여기에 참여해 당당히 묻고 요구해야 할 ‘한인사회 얼굴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토론은 3시간 가까이 지속됐다. 청중석에선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밤이 너무 깊어 사회자가 질문 그만하라고 설득하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이런 열기는 어디서 올까? 마지막 질문자의 절규처럼 "이 땅에서 우리 아들딸들이 더 이상 인종차별로 상처받지 않게 해야 할 의무"에서 나오지 않을까?

누군가 말했다. 교민들이 툭하면 한인회를 욕한단다. 평소엔 한인회에 관심 한 번 보이지 않고, 회비 한 푼 내지 않는 사람들이 무슨 일만 터지면 한인회 먼저 들먹거린단다. 한인회가 동네북이냐고 볼멘소리다.

그 불평을 그들에게 돌려보낸다. 한인회가 한인사회 동네북 좀 되면 안 되는가? 멋진 파티에서 ‘의전 넘버 1’을 즐기기 위해 한인회장이 되었는데, 구질구질한 일엔 나서지 않겠다고? 한인회와 한인회관이 그들만의 전유물이라 생각한다면 할 말이 없다. 회비 몇 푼 내고 한인사회에 먹칠하는 소송비로 몇 만 달러씩 펑펑 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면 또 할 말이 없다.

올해 미국에서 열리는 미주한인올림픽대회에 오랜만에 캐나다 대표선수가 참여하게 됐다. 얼마 전 대표선수단 관계자가 한인회관에서 실내경기 선발전을 하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사용료를 내라는 답변이 돌아왔단다. 결국 밤늦게 사용하는 조건으로 돈을 내지는 않았지만 그 얘기를 전해들은 필자는 내내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다시 토론회 얘기다. 주제가 주제인지라 공개토론회는 무겁게 진행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참석자들 가운데 대다수가 젊은이였다는 사실이다. 개인주의적이고 정체성에서 이미 이방인이고 단결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젊은이들이 대거 참석해 꼼꼼하게 메모하고 질문하는 모습에서 커다란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도 나름대로 공부 열심히 하고 이 땅에서 전문가 대열에 합류해 한인사회에 티끌만큼도 아쉬울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진지했다.

더욱이 토론회 말미에 한인변협 회장인 사이먼 박 변호사가 "이건 시작일 뿐, 우리 걸음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에서 한 줄기 위안을 얻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기성세대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필자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토론회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어느 참석자가 한 말이 귀를 때렸다.

“그들은 아마 골프치고 식당에서 회장선거 얘기로 뒤풀이하고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