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사회의 거울이다.

희망을 주는 신문. 한국일보가 새해 벽두 내걸었던 제작 방향이다. 한인경제를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독자들에게 약속했다. 이와 함께 한인사회의 맑은 거울이 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있는 사실을 무차별적으로 투영할 것인가, 아니면 밝고 따뜻한 모습을 골라 비춰줄 것인가. 이건 신문이 숙명처럼 안고 있는 과제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리 거창하게 나오는지 갸우뚱하실 것이다. 최근 며칠간 한국일보 지면에 별로 아름답지 못 한 기사들이 잇달아 등장했다. 그 가운데 압권은 ‘온주실협 협동조합 장부상 52만 불 증발 사건’이다.

이름이 너무 길다. 간단히 말해 은행계좌엔 돈이 그대로 있는데 장부에서만 돈이 사라진 사건이다.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다. 돈이 없어진 것도 아닌데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 그깟 장부 정리 실수가 대수냐고.

이런 게 바로 ‘대수’다. 맑은 거울을 지향하는 한국일보가 ‘맑지 않은’ 이 사건을 대수로 보는 이유는 차고도 넘치지만 딱 세 가지만 들어 보겠다.

첫째, 협동조합은 연매출 1억 달러가 넘는다. 캐나다에서도 1천대 기업 안에 들 수 있는 규모다. 대형 유통기업 회계전산 시스템이 고작 장부 이중기록도 걸러내지 못 한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둘째, 이 사건을 둘러싸고 도는 소문이 너무 흉흉하다. 입에 올리기조차 거북하다. 시간이 흐르면 잠잠해질 거라고? 천만에. 또한 제풀에 지쳐 스러진다 해도 이 소문이 남기고 갈 굵고 깊은 상처를 어찌할 것인가.

셋째, 먹고 사는 문제, 한인경제와 직접 관련이 있는 문제다. 협동조합은 누가 뭐래도 한인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캐나다 소수민족 사회에서 집단출자를 통해 이만큼 키웠다면 대놓고 자랑할 일이다. 우리 후대에 그럴싸한 기업이나 단체 하나 정도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겨줘야 하지 않겠는가.

사건의 본질은 돈문제다. 기업으로서 협동조합의 존립에 관한 문제다. 누가 폭로하고, 왜 폭로했고, 조합 매장 이전이 어떻고, 모모 세력 간의 암투가 어떻고... 다 곁가지에 불과하다.

52만 불 사건이 불거지면서 필자는 두 번 놀랐다. 다들 자신의 생존권이 걸린 협동조합에 대해 이렇게 무관심한 줄 몰랐다. 편의점 사업은 온타리오 한인인구 20% 가까이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중요한 비즈니스며 그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게 바로 도매상인 협동조합인데도 말이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 교민이 있는 곳엔 파벌이 있다는 말도 있다. 실협을 둘러싼 파벌싸움은 한인사회를 알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필자가 봐도 심각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렇게 치명적인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양쪽 다 꿀 먹은 벙어리다.

평소엔 그렇게도 ‘아무개파’ ‘반아무개파’ 운운하며 죽어라 싸우던 이들은 다 어디 갔는가. 실협과 조합을 살리겠다고 길길이 뛰던 리더그룹은 왜 정작 이런 중요한 사안에 침묵인가? 궁금하다.

‘52만 불 사건’이 결코 묻어서 넘어 갈 수 없는 이유는 이쯤에서 그치자. 실협이든 협동조합이든 최고경영층에게 묻겠다.

◆정전되면 전산회계 오류가 생길 위험성이 상존하는가? 왜 하필 10월 자료에만 오류가 집중되었는가?

◆그동안 오류가 없다가 최근에야 밝혀졌다는데 오류가 최근에 일어났다는 얘기인가, 아니면 10월에 오류가 있었는데 최근에 발견됐다는 얘기인가?

◆그렇게 찾기 힘든 오류를 신문 보도 문제가 불거진 이후 단 며칠 만에 밝혀낸 비결은 무엇인가?

◆이번 건도 누군가가 폭로하지 않았으면 묻힐 뻔한 사안 아닌가? 이같은 전산오류는 이번 딱 한 건에 그쳤는가?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은 제3의 전문가 그룹으로부터 검증받을 의향은 없는가?

이밖에도 많다. 그러나 최소한 이 몇 가지 질문에 큰 목소리 주장이 아닌, 구체적 자료와 성실한 답변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 어떤 해명도 의미가 없다. “전산 오류다” 달랑 이 한마디로 모든 것을 덮기엔 폭발성이 너무 크다.

‘어물쩍’이 통하지 않을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