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받았다.
망설였다. 이 편지를 가감 없이 신문에 실을까, 아니면 편집국장 칼럼에 소개할까. 필자에 대한 과도한 칭찬이 담겨 있어 쑥스러운 마음에 선뜻 결론내릴 수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여기에서 인용하는 것은 이 편지야말로 캐나다 한인사회의 말없는 다수를 대변하는 글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기자는 욕먹는 일에 익숙하다. 칭찬 듣는 것은 어색하다. 기자를 업으로 삼았다면 이건 숙명이다. 때론 뒤에서 기자의 사생활을 캐거나 인맥, 지연을 따지는 수준 이하 욕설도 짐짓 모른 척 넘겨야 할 때도 적지 않다.
편지로 돌아가자. 그는 장 여사다. 이름 밝히기를 꺼리기 때문에 성만 쓰겠다. 토론토에서 2시간 이상 멀리 떨어진 피터보로에서 남들 다하는 비즈니스를 하며 산다는 그는 한국어로 된 신문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늘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읽을 때마다 “울화가 치밀고 넌더리가 난다.”
무엇이 그렇게 “올해 환갑을 맞은” 평범한 이웃집 ‘아주머니’ 장 여사를 화나게 할까?
장 여사는 토론토 한인회원은 아니지만 한인회 돌아가는 걸 보며 속 뒤집힌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무보수 명예직이라고 말들은 뻔지르르하게 하면서 왜들 그리 목숨 걸고 싸우는지 “이런 모습을 행여 우리 2세 3세들이 볼까 두렵다”고 한다.
한인회는 한 차례 홍역을 겪은 후 다시 회장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회장후보 등록금 5만 달러를 들고 나와 많은 교민들을 웃겼다. 이제 선거에 누가 나오고 누가 당선되느냐는 교민들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 과연 선거가 잡음 없이 치러질까, 또 어떤 예기치 않은 트집을 잡아 한인들을 부끄럽게 할 것인가가 초점이다.
한인회와 실협 지도자들이 이런 말도 한다고 한다. “교민이 뭐라고 하든, 신문이 뭐라 떠들든 우리식대로 한다.” 쉽게 말해 눈감고 귀 막고 제 갈 길 가겠다는 것이다.
장 여사는 나름대로 회장 자격을 거론했다. 무보수 명예봉사직에 걸맞은 사람, 한인사회를 대표할 만한 자질이 있는 사람, 본인이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잘 아는 사람이 회장이 되기를 원한다.
그는 최근 협동조합 52만 달러 사건에 크게 속상했다고 한다. 관심을 접고 싶지만 내 비즈니스와 직접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서 더욱 화가 난다. 특히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거짓말”을 태연하게 하는 것을 듣고 “속에서 욕이 나올 뻔 했다”는 것.
무슨 일이 있어도 52만 달러 사건은 “명쾌하게”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고 또박또박 썼다. 장 여사 같은 분의 노력으로 이제 52만 달러 사건은 경찰에서 진상을 밝히게 됐다. 물론 공권력 의존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한한 한인사회는 자정능력을 상실했다. 스스로 해결하고 넘어가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졌다. 그러기엔 이 사안이 너무 심각하다.
장 여사가 분개하는 이유는 결국 이거다. “한인회나 실협 관계자들이 교민들을 얼마나 우습게보면 저럴 수 있을까?”
A4용지 4장에 빽빽하게 쓴 장 여사 편지는 이렇게 끝맺는다.
“정확하게 파헤치고 알아내서 교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그럴싸한 단체 하나라도 온전한 모습으로 우리 후손에게 넘겨줘야 하지 않겠어요?”
마지막 당부는 부탁이 아니라 무거운 명령으로 들렸다. 중간중간 감사와 칭찬 부분은 모두 생략했지만 과연 “교민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필자에게 던진 편지였다. 부끄러웠다. 군색한 변명이지만 “신문다운 신문을 만들기 위해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대답밖에 할 말이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덧붙인다.
여기 캐나다 땅의 수많은 ‘장 여사’들을 위해 이제 당신들도 한 번쯤은 착한일 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