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 얘기?

마음이 무겁다. 한국일보 독자들과 이름 모를 수많은 교민들에게 죄송함을 떨칠 길이 없다. 한인회 이름만 꺼내도 얼굴 먼저 찌푸리며 고개 돌릴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누군들 모르겠는가.

아름다운 이야기만 쓰려 해도 지면이 부족하다. 밝고 훈훈한 화제, 희망을 주는 기사로 가득 신문을 메우고 싶다. 필자라고 향기 나는 글만 쓰고 싶은 간절함이 없겠는가. 인생과 철학을 논하고 고담준론을 설하고 싶은 욕망이 왜 없겠는가. 세계 정치경제를 아우르는 지적 유희 본능이 어찌 없겠는가.

그럼에도 또 한인회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상황이 너무 절박하고 한심스럽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조용히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존재가 있고, 존재 그 자체가 미움 덩어리인 경우도 있다.

우리 교민사회 구심점인 토론토한인회는 어떤 모습일까? ‘고마운 존재’라 우길 사람도 더러 없지는 않을 것 같다. 현 한인회장과 이사장 2명, 그리고 얼마나 더(그나마 한인사회 일각에선 최종대 이사장과 이상훈 한인회장의 임기에 대해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불행한 현실이다. 동포사회의 정신적 지주여야 할 한인회가 세상에 둘도 없는 경멸과 조롱,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해 가는 걸 보며 눈 질끈 감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언론의 도리가 아니다.

그동안 한인회는 보여줄 만한 것은 다 보여줬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현재 두세 명의 인사들이 어떻게 하면 한인회를 망가뜨릴 수 있고 망가진 마지막 모습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 지 적나라하게 내보였다.

그리하여 말없는 다수 한인들에게 “역시 엽전들은 안 돼”라는 정체성에 대한 한없는 자기비하를 확인해줬다. 교민사회의 온갖 비판과 염원을 뭉개고 반 년 가까이 돌고 돌아 결국 한 줌 안 되는 이른바 한인회 실세들에 의한 차기 한인회장 임명이라는 시대착오적인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그들은 말한다. 법대로 하겠다고 한다. 한인회장 후보가 없을 경우 이사회가 15일 이내에 회장후보를 추천해 총회승인을 받으면 그만이란다. 맞다. 선거세칙에 그렇게 나와 있다. 그 세칙 누가 만들었는가. 지금 이 상황에서 그 법을 한인사회 다수 의견이라 우길 만큼 후안(厚顔)이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한인회 최고실세라 자처하는 분이 말했다. 법대로 이사회에서 추천할 수도 있지만 회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해 그곳에서 회장감을 뽑겠단다. 덕망 있고 능력 갖춘 지도자를 영입하기 위한, 또한 교민사회 화합을 위한 ‘고심에 찬 결단’이라는 뉘앙스가 풍긴다.

어느 지인의 자조적인 넋두리. 한인회 이사회가 급조하는 회장추천위원회에서 제대로 된 회장 세우길 바라느니 차라리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길 바라겠다고. 절대 공감한다. 왜?

첫째, 분란의 당사자인 이상훈 회장과 최종대 이사장이 구성하는 회장추천위원회에 들어가는 인사들이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바르고 중립적인 인사들이 거기 들어갈 수 있을까?

둘째, 바른 분들이 선뜻 들어갔다 치자. 그들이 한인회를 막무가내로 휘둘러온 그룹에 맞서 들러리 그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셋째, 들러리 이상의 역할을 했다고 치자. 그들이 임명한 회장이 소신껏 한인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을까?

넷째, 소신껏 일한다 치자. 그 한인회장을 교민사회가 진정한 지도자로 인정하고 존중해줄까?

결국 회장추천위원회라는 그럴싸한 이름은 장식품에 지나지 않게 된다. 엎어 치나 메치나 매한가지. 차기 한인회장은 지금 한인회 실세라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극소수 몇몇이 임명하는 꼴이 된다.

물론 펄쩍 뛸 것이다. 법대로 하는데 무슨 문제냐고. 이런 걸 바로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한다. 몇몇이 마침내 뜻을 이뤘다고 승리의 축배를 들 때 더 많은 한인들이 한숨지으며 등 돌리는 사태를 정말 모르는지.

자, 그럼 어찌할 것인가. 먼저 분란의 당사자들이 ‘회장임명’이라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과정에서 손 떼고 처음부터 다시 교민사회 여론을 수렴할 장치 먼저 마련하기 바란다. 도대체 교민들이 무얼 원하는지 귀 기울여 보길 권한다. 이왕 늦어진 거 좀 더 늦어지면 어떤가. 제대로 된 한인회를 세우겠다는데 그 정도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을 한인은 없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