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선 글을 쓰는 건 고통이다.

혹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그건 희열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우린 흔히 새디즘(sadism)이라 부른다. 프랑스의 변태적 소설가 사드 후작(Marquis de Sade)의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이 말이 유쾌하게 쓰이는 일은 없다.

한인회를 향해서, 정확하게 말하면 이상훈 회장 등 한인회 지도그룹을 향해서 죽어라 쓴말을 쏟아냈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다. 독하게 마음먹고 기사칼럼을 쏟아냈는데도 말이다.

필자도 한때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한인사회 지도자들은 왜 그렇게도 미운 짓만 골라서 할까? 혹시 욕먹는 일을 즐기는 것은 아닐까? 매저키즘(masochism)을 의심했다. 학대당하면서 기쁨을 누린다는 새디즘 반대현상 말이다.

오해였다. 지난 17일 금요일 밤 경이로운 일이 벌어졌다. 교민사회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심야에 이상훈 회장과 한성택 운영위원장이 어깨를 껴안고 협력을 약속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임시총회가 열리기까지엔 우여곡절도 컸다. 경찰을 동원한다는 말에 발끈한 교민들도 이날 대거 몰려왔다. 캐나다경찰을 사이에 두고 한인들끼리 대치하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그 치욕의 장면이 눈에 어른거렸다.

17일 낮 일찌감치 문이 잠겼다. 총회가 곱게 열리기는 기대난. 강당을 사용할 수 있네 없네, 옥신각신 다툴 때만 해도 “오늘 좋은 일이 있기는 다 틀렸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기우였음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주역은 바로 이상훈 회장이었다.

그는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던 그 임시총회에서 사회봉을 잡았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했다. 너무 당연한 일인데도 때로는 의외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바로 이런 순간을 말한다.

지난 6개월 동안 회장 선거를 놓고 끊임없이 잡음이 이어졌다. 상처는 컸다. 집행부 총사퇴론, 한인회 무용론은 아주 온건한 편이다. “아예 갈라서자” “제발 눈에 보이지만 말아다오” “한인회 기사 또 쓰면 한국일보 끊겠다”는 주장도 빗발쳤다. 심지어 한인회 자폭론까지 등장했다.

신문 만드는 것도 고역이었다. 한국일보는 이 과정에서 기계적인 중립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양쪽에서 모두 욕을 들어야 했다. 그래도 중립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았다. 온갖 험한 음해가 쏟아졌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필자는 토론토 한인사회에 아직도 낯설다. 한인회도 잘 모른다. 그러나 옳고 그른 것은 안다. 이번에 한인회 정상화에 절대 공을 세운 사람은 물론 한인회 잘되기를 바라는 말없는 교민 대중이지만 이상훈 회장을 명단 맨 앞 부분에서 내릴 수는 없다.

자칫 명예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도 있는 위기상황에서 대(大)를 위해 결단을 내린 공로, 결코 작다 할 수 없다. “한인회 정상화를 위해 임시총회 결정에 따르고 운영위원회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한 17일 깊은 밤 그 발언은 너무 당연하지만 한인사회에선 의미가 아주 크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얼마나 멋진 말인가. 이 회장은 하마터면 아름답지 못 할 뻔했던 뒷모습을 막판에 극적으로 반전시켰다. 그는 가을부터 학업 때문에 개인적으로 아주 바쁜 나날이 예약돼 있다 한다.

홀가분하게 길 떠나는 이 회장에게 시 한 귀절과 함께 박수를 보낸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의 ‘낙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