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格)이라는 게 있다.

개나 소에게도 각자에 걸맞은 격이 있고 방 한 구석 조그만 탁자 하나에도 격이 있게 마련이다. 하물며 사람임에야.

죄 가운데 참 모호한 것이 명예훼손죄다. 교민사회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송사가 바로 명예훼손 소송이다. 툭하면 소장 들고 판사에게 달려가 훼손당한 명예, 바꿔 말해 모독당한 품격을 회복하게 해달라고 하소연한다.

왜 뜬금없이 격을 논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사회의 공기(公器)인 신문에 개인사를 시시콜콜 늘어놓을 리 없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알 터이니 그만 중언부언(重言復言)하자. 본론이다.

온타리오 한인사회의 품격.

한 번쯤 툭 터놓고 얘기해보자는 말이다. “죄없는 자만이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라는 예수님 명령이 아니어도 이런 화두를 꺼내는 게 만용이라는 걸 잘 안다. 그럼에도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하필 왜 이때?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한인사회 두 기둥인 한인회와 실협이 본격 선거전에 돌입했다. 한인사회 품격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이벤트가 연거푸 열리게 된 셈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국이나 여기 교민사회가 가뜩이나 어수선하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양대 단체 선거를 둘러싼 공방전은 물위, 물밑 가리지 않고 거칠게 진행되고 있다.

그저 선거 유불리에 따라 서로 손잡거나 등돌리는 일이 다반사다. 서로가 원칙없는 이합집산, 야합, 배신 운운하며... 그래봐야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인데.

이미 한쪽에선 경선 자체가 물건너갈 위기다. 한인회장 선거에서 한 후보가 그다지 합당해 보이지 않는 이유로 덜컥 사퇴 먼저 선언해 버리고 말았다. 반년 넘게 돌고 돌아 겨우 성사된 경선의 끝이 이렇게 아름답지 못하다.

출마 한다, 안 한다, 누구를 지지한다, 안 한다... 뒤집고 또 뒤집고. 던지는 말들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어지러울 뿐이다. 한참 지나다 보면 언제 했던 말이 진짜인지 어떤 말이 가짜인지 기자들도 구분하기 어렵다. 본인들도 모른다.

웃지 말기 바란다. 이건 실화다. 후보로 거론되는 어떤 사람은 발언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에 “제가 그 말을 했던가요?”라며 “했다면 그건 아마 잘못 나온 말일 겁니다”고 대답하기도 한다. 내용이 잡담 수준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출마한다, 안하다”라는 중요한 내용인데 본인이 기억조차 못하다니.

조변석개(朝變夕改)라는 말도 이들에겐 과분하다. 말 바꾸기로 유명한 한국 정치인들을 뺨친다. 계승발전시킬 게 따로 있지 한국에도 좋은 것 지천인데 하필 왜 이런 저급한 문화만 쏙 빼닮았는지.

좋다. 그건 한인사회 지도층이라 자처하는 분들의 일이라 치자. 난 저 까마귀들과 다르니 묶어서 도매금으로 넘기지 말라고 항변하는 당신은 정말 백로인가?

“여기 몇 표 있으니 돈 얼마를 갖고 와라.”

몇 명만 모이면 후보에게 이런 전화를 한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 아닌가. 고무신, 막걸리선거가 판치던 60년대 70년대 한국 농촌의 풍경? 천만에. 21세기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벌어진 일이다.

어느 단체장 선거의 경우 일부 지역에선 공개투표가 자행된다고 한다. 특정후보 이름에 동그라미 치지 않으면 아예 투표장 입장도 못 하게 한다는 것. 100% 가까운 몰표. 이 말을 처음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사실 아니길 빌었다. 더욱이 그들은 이걸 ‘회원단결’이라 자랑한다니 같은 한인으로서 억장이 무너진다.

시대착오적 행태는 이밖에도 차고 넘친다. 이러고도 그 후보가 단체장에 당선되고 나서 사심 없이 일하기를 바란다고? 열과 성을 다해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하길 바란다고?

지인들로부터 누누이 들었다. 진흙탕 싸움에 잘못 끼였다간 망신당하기 십상이라는 애정 어린 경고였다. 그러나 백년하청(百年河淸). 흙탕물 맑게 하려면 누군가는 나서야 하지 않을까?

이왕 말 나온 김에 품격과는 거리가 먼 한인사회 단면들을 더 뜯어보자.

첫째, ‘아니면 말고’식 음해성 소문은 왜 그리 횡행하는지. 루머를 생산하는 쪽이나 유통하는 쪽이나 소비하는 쪽, 모두 난형난제(難兄難弟)다. 한 번 당하면 당사자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는다.

둘째, 상식이 실종됐다. 언제까지 “미국 한인사회는 더 그래”라는 말을 위안으로 삼을 건지.

셋째. 예의가 없다. 무례한 사람일수록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을 남발한다. 내가 무례한 건 화통함이요, 상대방이 예의를 따지는 건 건방짐이다.

넷째, 또 왜 그리 패거리싸움에 목숨을 거는지. 내 편 아니면 다 적이다. 중간지대가 없다. 이런 척박한 땅 어디에 건강한 문화가 싹틀 수 있을까.

토론토 한인사회는 동네골목 같다. 소문이 한 바퀴 도는 데 이틀이 채 걸리지 않는다. 신문사는 소문과 정보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허브다. 기사에 대한 반응이 즉각 온다. 격렬한 반응은 칭찬이든 욕설이든 기자에겐 행복이다. 그러나 그 반응에 상상을 초월한 음해가 실려 있을 땐 모든 게 싫어진다.

한인사회의 품격.

극도로 민감한 주제다. 한인회나 실협, 양대 단체의 장이라면 모독당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인격을 갖추었으면 좋겠다. 아니다. 한인사회 구성원 모두가 훼손당할 만한 충분한 명예를 지녔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인사회의 격(格)에 대해 공개토론회 한 번 열었으면 좋겠다. 토론이 아니면 어떠랴. 그냥 털어놓는 것 자체가 해결책일 수도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