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서 이름 있는 어느 회원제 골프클럽이 영어를 못하는 한인의 회원 신청을 받지 않기로 했다는 보도(2일자 A2면)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지나칠 일이 아니다. "골프장 규칙을 수시로 위반하고 회원으로서의 참여의식조차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클럽측의 말은 캐나다 전체 한인들에게 얼굴 붉어지는 이야기다. 특히 이번 일은 LPGA의 '영어 사용 의무화' 정책이 논란을 빚는 가운데 밴쿠버선과 내셔널포스트 등 국내언론에 보도됨으로써 한인 매너가 전국적으로 구설수에 오르게 됐다는 점이다.

밴쿠버골프클럽 측은 "최근 한인회원들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한 후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들에게만 회원자격을 부여키로 했다"며 "클럽에서 원하는 것은 원활한 골프장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의사소통"이라고 말했다. 골프장 규칙을 지켜달라고 여러 번 주의를 줬지만 도저히 먹혀들지 않아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는 소리다. 프라이빗 골프장은 회원자격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번 문제는 한국적 정서를 내세우며 불평할 일이 아니다. 영어 구사보다는 규칙과 매너에 관한 사안으로 LPGA의 영어의무화 조치와는 성격이 다르다.

골프는 무척 예민한 운동이다. 에티켓을 지키지 않으면 게임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다. 골프 규칙 1장이 에티켓인 이유다. 골프는 스포츠 중에서 심판이 없는 유일한 운동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이 심판이 되어 잘못이나 실수를 스스로 보고하는 명예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운동경기를 배울 때 그 경기의 정신과 매너를 함께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술만 익히다보니 이번과 같은 일이 터진 것이다.

다른 민족들도 골프를 한다. 하지만 한인 골프는 유난히 말이 많은 것 같다. 내기골프와 매너문제 등으로 코리언이라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골프클럽이 밴쿠버뿐만 아니라 토론토 등 다른 도시에도 있다. 다수의 한인들이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다. 일부 몰지각한 골퍼들이 전체 한인의 이미지를 흐리게 하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 스스로를 거울 앞에 세워볼 필요가 있다. 왜 우리가 이런 수모를 당해야하는지 자신에게도 물어볼 필요가 있다. 골프장뿐인가. 관광지의 숙박업소 중에는 한인들을 기피하는 곳이 있다. 취사금지 구역인데도 버너를 가져와 라면과 김치찌개를 끓여먹으며 냄새를 피우기 때문이다. 레스토랑도 마찬가지다. 큰소리로 얘기하고 웨이터에게 손짓하는 손님을 환영할 식당은 없다.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에티켓이다. 골프만 그런 게 아니다. 매사에 규칙과 매너를 지킨다면 이곳에서 우리 이미지가 나아지고, 그 이전에 우리 스스로 살기가 편해질 것이다.

이민사회의 뿌리교육과 추석

한민족의 큰 명절인 추석이 다음주(14일)로 다가왔다. 민족대이동을 앞둔 한국은 불경기 속에서도 귀향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술렁댄다. 예년의 경우로 볼 때 캐나다한인사회의 추석 쇠기는 식품점과 떡집 등만 붐빌 뿐 한국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이민생활에서 전통명절을 지키기가 어려운 것은 공휴일이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터에 매여 있어 정신적 여유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추석은 마침 휴일로 평상시 보기 힘든 가족친지들과 한 자리에 모여 즐기기에 좋은 날이다.

명절은 이민사회에서 자녀를 키우기 때문에 더욱 강조돼야 할 날이다. 다문화 전통 속에서 자녀를 건강하게 키우는 데 명절만큼 자연스런 기회가 없다. 명절을 통해 자녀들은 전통을 배우고 전통은 민족적 정체성의 뿌리가 된다. 다문화사회에서 뿌리는 균형감각의 원천이 된다. 유대인들이 수천 년 나라 없이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절기와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킨 덕분이었다. 중국 커뮤니티가 설 같은 명절을 축제기간으로 정해 며칠씩 휴무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전통이 살아있는 민족은 맥이 끊기지 않는다.

추석은 옛부터 "더도 말고 덜고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했을 만큼 풍성한 마음으로 함께 즐기는 날이었다. 마음이 즐거워지면 생각도 넉넉해진다. 일상을 보는 눈도 여유를 되찾게 되고 남을 위한 배려도 깊어진다. 지금 우리 주변엔 따뜻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이 많다. 추석은 이들에게 넉넉한 마음을 전하는 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