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기적이다. 한강의 기적은 흘러간 노래가 아니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것도 캐나다에서. 몇 달을 울적한 경제침체 소식에 짓눌려 지내온 한인들에게 ‘메이드 인 코리아’의 ‘3관왕’ 소식은 가슴 후련한 쾌거다. 노력하는 자에게 넘지 못할 벽은 없다는 자신감 회복의 드라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캐나다에서 ‘짝퉁 일본차’로 불렸던 ‘현다이’의 제네시스가 국내자동차업계 최고상을 받았다. 김연아는 올림픽전초전 성격의 4대륙 피겨선수권대회에서 엉덩방아를 찧고도 기어이 우뚝 서고야 마는 인간승리를 이뤄냈다. 국민소득 80달러, 농업 의존도 80%의 최빈국(最貧國) 한국의 휴대폰이 지난해 캐나다시장을 석권한 것도 기적이라는 말로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경제난국으로 모국인과 해외한인 모두들 기가 죽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도 한강의 기적은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브로몽 악몽’ 벗어나 새 지평

이 땅에서 싸구려 차의 대명사였던 현대의 제네시스가 캐나다자동차기자협회(AJAC)의 ‘올해의 자동차(2009 Canadian Car of the Year)’로 선정된 것은 80년대 ‘포니신화’에 버금가는 하나의 사건이다. 4반세기 전 포니가 캐나다에서 가격으로 일본차를 앞질렀다면 제네시스는 품질로 앞질렀다. 스티븐 켈러허 캐나다현대 사장이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외친 이유다.

현대는 캐나다와 사연이 많다. 해외에서 처음 대성공을 거둔 곳이자 처음으로 참담한 실패를 맛본 곳이다. 현대는 포니 돌풍에 힘입어 89년 7월 퀘벡주 브로몽에 연산 10만 대 규모의 쏘나타 공장을 세웠다. 현대차를 이끌던 정세영 당시 회장은 캐나다를 교두보로 북미시장에 본격 진출한다는 야심을 가졌다. 3년에 걸친 브로몽공장 건립에 현대는 3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그러나 일본차의 미국 현지생산이 늘어나면서 공급과잉 북미시장에서 품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현대가 설자리는 없었다. 결국 1993년 10월 브로몽 공장은 5억 달러에 달하는 누적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가동 4년 만에 문을 닫았다. ‘브로몽의 악몽’은 현대뿐만 아니라 한인들에게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현대는 포기하지 않았다. 특유의 뚝심을 발휘, 브로몽 악몽을 딛고 명차 브랜드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한 기업의 성공사례를 홍보하려는 게 아니다. 참담한 실패와 좌절을 이겨낸 한국인의 ‘하면 된다’는 근성을 말하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파이팅정신이 있다면 이곳에서 해내지 못 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빙상에 재연된 박세리 투혼

피겨스케이팅 불모지에서 세계 피겨여왕이 탄생한 것도 한국인이 어떤 저력을 가진 민족인지를 잘 보여준다. 지난주 밴쿠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의 투혼은 IMF 시절 박세리를 연상케 한다. 지난 98년 7월 US오픈에서 박세리는 추아시리폰과 연장 접전 중에 연못 경사진 면에 공이 빠져 우승은 멀어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신발과 양말을 벗은 채 ‘연못샷’을 날려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19살 소녀 김연아도 빙판에 추락했지만 별 일 없는 듯 다시 일어나 당당히 우승했다.

AP통신은 “세계무대를 석권한 한국여자 골프의 힘은 올인문화 덕분”이라고 보도한 적이 있다. 김연아가 피겨여왕이 된 것도 바로 목표에 모든 것을 거는 올인문화 덕이다. 한국에서 대학에 가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에 주력해야 하듯 피겨스케이팅 역시 지옥훈련은 기본이다. 그런 고통과 어려움을 혼자의 힘으로 극복했다. 외환위기 때 박세리가 한국인에게 꿈과 희망을 준 스타였다면 경제위기 때 그 배역은 김연아가 맡았다. 김연아의 아름다운 투혼에 캐나다인도 갈채를 보낸다. 그간 토론토에서 훈련해왔고 코치도 캐나다사람이기 때문에 ‘수양딸’ 대접을 한한다. 캐나다언론도 마찬가지다. 10대 소녀가 ‘코리아 홍보대사’ 역을 톡톡히 하며 한인들의 이미지까지 높여준다.

삼성·LG 전자의 국내 휴대폰시장 석권 뉴스도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한다. 신발과 옷을 팔던 후진국이 첨단기술 제품으로 국내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홀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두 회사의 시장점유율을 합하면 40%다. 캐나다 휴대폰 10대 중 4대가 한국산이다. 휴대폰뿐 아니라 평면 TV 등 디지털 가전제품시장에서도 한국산은 고품질의 대명사가 됐다. 소니 모방에 급급했던 때가 불과 10여 년 전인데 이젠 소니가 삼성을 모방하려고 정신이 없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동안 한국기업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를 한 것이 오늘날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한국인은 슬기롭다. ‘빨리빨리’ 때문에 사고 칠 때도 있지만 ‘빨리빨리’ 덕에 세계가 놀라는 기적을 단시간에 일궈내고 있는 것이다. ‘캔 두(can do)’ 밑천 하나로. 한국, 한국인의 ‘트리플 크라운’이 한인사회에 ‘캔 두’ 정신을 재점화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