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와 미국의 한인목회자들도 최근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번 시국선언에는 캐나다서 목회 중이거나 신학교에 재학 중인 30~40대 목사 42명이 참여했다. 이들의 시국선언문은 ◆남북평화를 위해 노력한 국민 앞에 회개할 것 ◆철거와 해고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 앞에 회개할 것 ◆대통령 스스로 돌이켜 공의롭지 못 한 자신의 모습을 회개할 것 등을 주문하고 있다. 한 달 전에는 캐나다 등 북미대학교수 265명이 한국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며 국정쇄신을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의 시국선언은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타계 이후 서울대 등 일부 대학교수들과 야당 및 시민단체 등의 시국선언문 발표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4일 서울대교수 124명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는 정치보복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며 정부 사죄를 요구하고, 촛불시위 참가자 사법처리와 대북정책 위기 등으로 민주주의가 위기로 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을 ‘독재자’로 규정하고 “독재자에게 아부하는 것은 용서 안 된다. 행동하는 양심이 돼서 모두 들고 일어나야 한다”며 시국선언 확산을 부추겼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1년4개월을 보면 잘못한 점도 적지 않지만 잘한 점도 있다고 본다. 개혁청사진을 제시하지 못 한 채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 여당 내에서도 쇄신론이 제기될 정도로 국민들의 실망감이 컸다. 사적 관계나 보은차원의 인사, 부자편향 정책, 대운하 변칙추친, 용산 과잉진압 등도 실책으로 꼽을 만하다. 하지만 실추된 공권력을 회복하고 외교 및 안보정책을 복원한 것은 업적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지난 10년간의 대북정책을 바로잡은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일부 비판자들이 이명박정부를 ‘독재정부’라 비난하고 대북정책과 관련, “북한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공감할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스타일을 보면 일부 강압적인 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독재자로 모는 것은 한참 도를 넘은 것이다. 백 보를 양보해 이 대통령이 ‘독재자’라면 김정일 위원장은 무엇인가. 세계가 공인하는 ‘독재자중의 독재자’가 아닌가. 그런 사람을 비판하지 않으면서 자국 대통령에게만 거친 말을 쏟아내는 것은 옳은 처사가 아니다.

민주주의가 후퇴한다는 주장도 그렇다. 집회·결사자유가 일부 제한되고 진보언론을 탄압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모두 들고 일어나야 할’ 만큼 국민기본권이 침해를 당했다고 보진 않는다. 쇠파이프와 화염병까지 등장하는 폭력시위를 허용하는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는가. 경찰이 과잉진압을 해서도 안 되겠지만 폭력시위에 관대해서도 안 된다. 이번 시국선언의 직접 계기는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에서 비롯됐다. 노 전 대통령사건 수사 시 검찰이 ‘오버’한 점은 일부 인정된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인 이상 대통령의 불법적인 돈거래는 어떤 경우에도 법의 심판에서 예외가 돼서는 안 된다. 노 전 대통령의 타계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전직 대통령은 죄가 있어도 수사하면 안 된다는 논리로 몰아가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 한국은 난국에 처해 있다. 경제위기도 위기지만 더 큰 위기는 안보위기다. 안보위기의 원인제공자는 ‘남북평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은’ 현 정부가 아니라 북한정권이다. 북한정권은 지난 5월 2차 핵실험을 강행한 데 이어 심심하면 미사일을 날려대고 있다. 3대 세습체제를 굳히기 위한 긴장 고조용으로 보이는데 시대착오적인 권력세습을 위해 한반도 전체를 공포분위기로 몰아넣어도 된다는 말인가.

진정 조국의 내일을 생각하는 ‘행동하는 양심’이라면 한반도와 세계평화 질서를 파괴하는 북한정권을 향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는 게 더 시급한 일이 아닐까. 이명박정부를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잘못된 점은 가차 없이 비판하되 균형적인 시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한 북한주민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한국민의 인권만을 거론한다면 다수의 공감을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기부모범 보인 ‘분재할아버지’

‘테레사효과’라는 게 있다. 테레사 수녀의 헌신적인 봉사활동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람이 착한 일을 하거나 남이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인체 내에서 갑자기 엔도르핀이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9일자 본보에 소개된 토론토 전갑진씨 기사가 그렇다. 71세의 전씨는 자택 뒷마당에서 ‘선인장 분재’를 길러 자신이 사는 스카보로 및 온타리오주 워털루 등지의 구제상점(Thrift Shop)에 헌납, 노숙자 돕기에 앞장서고 있다. 전씨는 지난 6년간 6천 개의 선인장 분재를 국제구호단체인 MCC(Mennonite Central Committee)에 기부, 2만여 명의 극빈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분재에 필요한 화분들은 가정에서 쓰지 않는 것들을 수집, 재활용한다. 은퇴생활을 바쁘게 보내면서 남을 돕고 환경보호도 하는 1석3조의 삶이다.

전씨 일은 꼭 은퇴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들도 할 수 있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자녀와 함께 시작해도 된다. 아주 교육적이며 자녀 정신건강에도 좋다. 또한 ‘구제상점’에 연락하면 선인장 분재가 아니라도 다른 비슷한 방법으로 ‘돈 안 들이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길이 많을 듯하다. 70대 한인의 은퇴생활이 기부문화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