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처럼 녹용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다. 세계 거래량의 60%가 한국에서 소비될 정도다. 녹용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한국에서 사육되는 사슴숫자가 적을뿐더러 소비자들이 ‘품질과 약효가 우수한’ 러시아산과 뉴질랜드산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중국산도 유통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나라 중 러시아산와 중국산은 위생에 일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슴 만성소모성질환(CWD·일명 사슴광우병)에 대한 검사를 철저히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사 병에 걸린 사슴이 발견돼도 ‘국익’ 차원에서 정직하게 발표하지 않는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한국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러시아산 중 절반이 실제로는 캐나다제품이라는 점이다. 사슴광우병 때문에 한국에서 9년째 금수(禁輸)리스트에 올라있는 캐나다산이 어떻게 시중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는가. 중국에서 대량 밀반입되기 때문이다. 알버타와 BC주에서 수입된 엘크의 뿔은 중국 대련항에서 가공, 러시아산으로 둔갑해 한국에 밀수출된다(13·14일자 A7면).

한국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최고품으로 알고 비싸게 구입한 러시아산에 위생문제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며, 만약 러시아산이 아니라도 더 ‘문제’이기 때문이다. 광록병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캐나다산을 먹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찝찔할까.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의 관계당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캐나다산 수입만 막으면 ‘문제 끝’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당국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 하는 건 아니다. 알버타 등 캐나다 일부 지역에서 광록병이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그래도 발생하고 있고, 국제수의학회 등 관계기관에서 광록병에 걸린 사슴고기와 녹용을 섭취하지 말도록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조치는 정당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캐나다 입장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전국에 1,500여 회원을 가진 ‘캐나다사슴사육협회’는 “러시아 등 한국에 녹용을 수출하는 나라들에게는 없는 동물추적시스템을 캐나다는 갖고 있고, 어느 나라보다도 철저하고 광범위하게 사슴 위생검사를 한다”고 강조한다. 캐나다처럼 엄격하게 검사하면 러시아나 중국도 광록병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는 뜻이 함축된 말이다.

실제로 국내 사슴농장주들은 사슴을 외부로 이동시키거나 도살할 때마다 일일이 관계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다른 농장에 팔 때는 반드시 질병테스트를 거치는 등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다. 위반 시에는 거액의 벌금을 물리기 때문에 법규를 어기는 농장주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또한 캐나다검역당국에 따르면 2000년부터 지금까지 국내산 사슴고기나 녹용을 먹고 문제가 생긴 경우는 전무하다. 광록병은 광우병과 달리 사슴 간에만 감염되고 사람과 소·돼지 등 어떤 가축에도 전염됐다는 보고도 없다. 이 정도라면 그간 한국정부나 소비자들이 보여준 캐나다 광록병 공포는 이곳 시스템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생긴 것으로 실제보다 훨씬 부풀려진 측면이 많다. 사스와 광우병 공포가 과장됐던 것과 비슷하다.

캐나다 관계당국이나 업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려는 게 아니다. 한국당국의 공정한 잣대 적용을 주문할 뿐이다. 만약 광록병에 의한 인간 전염이 나타난다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나라다. 그런 만큼 관계당국은 국민들에게 사실은 사실대로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진정으로 국민건강을 생각한다면 다른 녹용수출국에 대해서도 캐나다에 버금가는 엄격한 위생검사를 요구해야 한다고 본다. 더 이상 캐나다산 밀수품의 불법유통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이것은 캐나다에게도 불명예스런 일이다. 밀수품을 철저히 단속하되 ‘너무 정직’해서 받는 불이익도 없도록 조치해 주기 바란다. 금수가 능사는 아니다.

광복절을 역사교육의 날로

광복절을 맞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가 2세들에게 물려줄 정신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민 1세들은 2세들보다 캐나다에 대한 상식이 모자라고 영어장벽을 넘지 못 해 부모이면서도 가르치지 못 하는 게 많다. 오히려 캐나다에 관한 지식에 있어서는 자식들에게 배워야할 형편이다. 우리가 2세들에게 자랑할 수 있고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신이다. 이는 2세들에게 결핍돼 있는 공통적인 취약점이다.

미주이민사에서 한국인이 본격적으로 노동이민을 오기 시작한 것은 1903년이다.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인삼장사를 하던 행상들이 생겨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러나 한인사회가 ‘정신’을 갖기 시작한 것은 정치망명객들이 미국으로 건너오면서부터다. 한인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고 동포애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독립정신 덕이다.

우리는 2세들에게 미주한인들의 독립운동사를 알려줄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초대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미주한인출신이라는 것을 아는 2세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캘리포니아와 하와이가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 2세들은 얼마나 될까. 미주한인인 서재필 박사는 한국으로 돌아가 독립신문을 창간했고 독립문을 세웠으며, LA에 살던 도산 안창호 선생은 범커뮤니티적인 인격운동을 벌여 현지인들에게 한인사회가 어떻게 보여야 할 것인가를 시범보였다.

역사를 망각하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광복절을 맞아 2세들에게 코리언 이민선조들이 어떤 사람들이었고 어떤 정신을 지녔던가를 알려주자. 이런 정신을 밑거름 삼아 모국은 오늘날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후손들도 그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해주자. 1세들끼리 광복절행사를 형식적으로 치르고 넘어갈 게 아니라 이민선조들의 모습과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날로 삼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