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antanamera!

Guajira! Guantanamera!

관타나모의 여인들이여!

농사짓는 여인들이여!

Yo soy un hombre sincero

De donde crece la palma

나는 야자수 고장에서 자란

순박하고 성실한 사내라오

Y antes de morirme quiero

Echar mis versos del alma

죽기 전 내 영혼의 시를

이들에게 바치고 싶다오

Mi verso es de un verde claro

Y de un carmin encendido

시 구절들은 연둣빛이지만

정열에 불타는 진홍색이라오

Mi verso es un ciervo herido

Que busca en el monte amparo

내 시는 산에서 은신처 찾는

상처 입은 새끼사슴과 같다오



한인후예 ‘코레아노(Coreano)’들이 들려주던 ‘관타나메라’가 아직도 귀에 찡하다. 카르데나스(Cardenas)지역 코레아노 273명의 집합체인 한인회에서 선발된 남녀노소 합창단은 아리랑, 옛날애국가, 대중가요 ‘만남’에 이어 ‘관타나메라’를 기타 반주에 맞추어 신명나게 불러, 토론토에서 간 손님 일행을 즐겁게 했다.

전래민요 가락에 쿠바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인 혁명가이자 사상가이며 문필가였던 호세 마르티(Jose Marti)의 시를 가사로 붙인 관타나모의 여인이라는 뜻인 ‘관타나메라’는 쿠바 제2의 국가(國歌)라고 불릴 정도로 온 국민의 애창곡이다. 마르티의 마지막 작품에 속하는 시 ‘관타나메라’는 그가 죽은 뒤 스페인의 식민지로 온갖 고통을 겪으며 살아오던 쿠바인들에게 구전민요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는 16살 때 독립운동하다 체포되어 징역형을 받았고, 그후 스페인으로 추방되어 그곳에서 법학과 철학, 문학을 공부한 뒤 중남미를 전전하다 1895년 4월11일 쿠바해안으로 잠입했으나 한 달 후에 스페인군대의 기습을 받고 41세를 일기로 사망했지만 그가 남긴 시와 글들은 싹이 터서 마침내 꽃을 피웠다.

쿠바 남서부 종려나무의 고장 관타나모의 항구는 스페인과의 독립전쟁의 대가로 미국에 내어준 뒤 지금은 ‘쿠바 속의 미국’으로 500명이 넘는 알카에다와 탈레반 포로들이 수용돼있다. 미국과 스페인 간의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1903년 스페인과 체결한 임대계약서에는 미국이 동의하는 시점에 임대계약이 만료되는 것으로 적혀있다.

필자는 지난 15일부터 일주일동안 쿠바를 둘러보고 작성한 기획 ‘쿠바의 코레아노’를 연재하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관타나메라를 여러 가수들의 연주를 통해 들으면서 중남미 섬나라 쿠바 속에 흠뻑 빠져들었다. 미국의 경제봉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쿠바지만 의무교육과 무상의료 시스템, 환경주의자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있는 유기농업(organic farming)으로 호세 마르티의 꿈을 실현시켜나가고 있는 쿠바인들의 피 속에는 체 게바라와 함께 호세 마르티, 그리고 관타나메라가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코레아노들의 몸속에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1904년 멕시코로 이민 간 한인 1천여 명 중 274명이 1921년 3월 마나티항에 도착함으로써 시작된 쿠바 코레아노의 이민역사는 올해로 88년이 된다. 쿠바 전역에 거주하는 한인후예 1천여 명(아바나한인회 집계 944명) 중 멕시코에서 태어나 한 살 때 부모를 따라 쿠바에 온 장천희 할머니가 쿠바한인사회에서 최고령이었으나 2년 전에 세상을 떠남에 따라 한국은 물론 멕시코에서 태어난 사람마저도 없는 실정이다. 그러니 이들이 우리말을 구사하지 못 하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다행히 쿠바 최대의 NGO(비정부조직)인 호세 마르티 문화원 산하로 한글학교가 2005년에 수도 아바나 등 3곳에 세워진 덕분으로 한한글과 뿌리교육이 실시되어 한글을 조금씩 하는 후예들이 늘어나고 있는 중에 정부당국의 지시로 지난해 11월에 문을 닫게 됐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규제가 심한 사회주의국가가 지적한 문제점을 과감히 보완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한글학교가 다시 열리기를 쿠바에 진출해 있는 기업들이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터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05년 기준으로 996달러인 쿠바에 사는 한인후예들에게 가장 아쉬운 것은 몇 푼의 돈이 아니라 한국인의 뿌리를 잊지 않게 해주는 지원책이다. 이 일은 모국은 물론 북미에서 이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