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열기는 상상도 못 했다.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은 줄줄 쏟아졌다. 그럴만도 했다. 150명 정원 강의실에 300여 명이 들어섰으니 쾌적한 강연회는 처음부터 기대난(期待難). 입추(立錐)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 실감났다. 송곳 하나 세울 자리 없었다.
지난 8월20일 도산홀엔 고등학생과 대학 초년생, 학부모 등 400여 명이 몰려들었다. 뒤늦게 도착한 100여 명은 아예 강연장에 발을 딛지도 못 했다. 그날따라 천둥번개를 동반한 토네이도가 온타리오 일원을 휩쓸었다. 폭우 속으로 발길 돌리는 모습을 보는 게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한국일보가 주최한 그날 강연회의 주제는 ‘전문직 진출을 위한 진로 조언’. 연사인 기노진 토론토대 교수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포들의 교육 열정이 높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뜨거울 줄이야.
훅훅 찌는 무더위도 반짝이는 눈망울을 가리지는 못 했다. 질의응답 시간엔 학생 학부모 가리지 않고 번쩍번쩍 손을 들었다. 밤을 새운들 그 타는 갈증을 어찌 다 풀어줄 수 있을까. 한인들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우리 미래를 보았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다. 안타까움이 더 컸다. 교육정보에 대한 목마름이 이렇게 절실한데 누가 물을 채워줄 것인가.
얼마 전 한인 젊은 전문직업인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공부도 잘했다. 변호사·의사·공인회계사 등 다들 선망하는 직업을 갖게 됐다. 주류사회에 당당히 진입했다. 그러나 그 순간 곧바로 깨달았다고 한다. 죽었다 깨어나도 자신들은 한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후배들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진로정보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 주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자신들이 겪었던 시행착오(試行錯誤)를 아우들이 겪지 않기를 바라기에.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얼마나 가슴아픈 일인가. 그들과 헤어져 오는 길에 “나는 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해 무슨 일을 했고 앞으로 할 것인가” 부끄러움이 엄습했다. 또 “토론토 한인단체에서 감투 하나씩 다 차지하고 있는 기성세대들은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정말 무얼하고 있을까?
한인사회에서 교육정보를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곳은 없는 것 같다. 필자가 과문(寡聞)한 탓일 수도 있다. 한국학교협회도 있고 2세 교육에 적극적인 일부 종교단체도 있다 한다.
그러나 대부분 한인들은 “내 자식만은”하며 이를 악물고 자녀교육에 각개약진한다. 한인커뮤니티는 교육에 관한 한 교민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도 못 하고, 준 적도 없고, 줄 생각도 없는 것 같다.
물론 후세교육을 위해 한인단체들이 가시적으로 무슨 일을 하지 않아도 좋다. 오히려 하지 않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딱 한 가지만 우리 서로 마음속에 새겨두자.
자식들 앞에서 체통 좀 지키자. 그거 별로 어려울 것도 없다. 몇 가지만 피하면 된다. 하찮은 감투다툼, 별 의미도 없는 이념논쟁, 태평양까지 건너와 지역으로 편가르는 못난 짓 등등 이런 거 말이다.
부모세대가 품격을 지키는 게 최고의 자식교육이 아니겠는가.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많은 한인 이민자들이 교회에 다닌다. 교회 가운데 2세 교육에 특히 열심인 곳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대부분 교회는 여느 한인단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다.
물론 일부에 국한된 얘기이겠지만 이민교회의 외적 성장을 두고 교만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한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이민교회 양적 팽창의 가장 큰 요인은 이민자가 늘어난 점이고 침체의 가장 큰 원인도 더 이상 이민자가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회끼리 신도 확보를 위해 다투는 낯 뜨거운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한다.
지금 경제 상황과 캐나다 이민정책을 보면 90년대 말 2천년대 초처럼 한국 이민자들이 보따리 싸들고 캐나다로 몰려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대로 넘어가면 다음세대에서 한인교회 존립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뜻있는 분들이 내세우는 해결책은 딱 하나. 2세 교육이다. 교육에 관한 교역자들의 인식 대전환이 없으면 미래는 없다는 것. 신앙적이지 못 한 세속적인 해결책이라고 손가락질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민병갑 뉴욕시립대 교수의 연구결과가 떠오른다. 민 교수는 지난달 도산홀 강연에서 “이민교회는 2세 교육에 관심도 없고 이로 인해 한인 정체성을 상실했다. 정체성을 상실한 한인 2세들이 주류사회에 적응하기 더 어렵고 대접도 받지 못 한다”고 미국 한인교회 실상을 전했다.
여기 토론토에서도 되새겨볼 만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