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서울특파원을 지낸 한 일본기자는 귀국 후에 이완용을 연구할 계획을 세웠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한국의 친분 있는 언론인이 “왜 하필이면 이완용이냐”고 물었다. 일본기자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서울 근무시절 이완용에 관한 기사를 쓰기위해 이완용 전공학자를 찾아 헤맸으나 모두들 없다고 하더라. 이유인즉 이완용을 전공하면 한국역사학자로서 체통이 안 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내가 이완용을 연구하면 1인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앞으로 제2의 이완용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한국인은 이완용을 더욱 철저히 연구해야 할 것이 아닌가.” 이 얘기는 몇 년 전 어느 신문에서 본 기사 내용인데 당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에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이번 독도사태에서 보듯 일본은 자기네 영해든 한국영해든 바다 속에 무엇이 어떻게 돼 있는지 이 잡듯 들여다보고 연구해왔다. 또 세계 학계를 대상으로 자신들의 논리를 끊임없이 전파, 친일·지일파 학자들도 대거 육성하고 있다. 모든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이완용 연구까지 맡겠다고 나서는 판인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그런 일본을 한국은 지금까지 '임시 땜방'으로 맞대응했을 뿐이다. 이러고도 독도를 빼앗기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광복의 달 8월이 성큼 다가왔다. 한국인에게 8월은 빛을 되찾은 달이지만 일본인에게는 치욕의 달이다. 그러나 특히 금년의 경우, 양국의 명암이 엇갈린다. 한국은 침통한 분위기이지만 일본은 ‘승전’의 기쁨을 누린다. 미국 지명위원회가 독도를 중립적 의미의 '록스'로 바꾼 것은 무려 31년 전이었으나 한국인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디에선가 독도 영유권이 '한국'에서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바뀌고 있을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런데 일본을 규탄하는 분노의 소리만 크지 한국의 무지와 무능을 자책하는 소리는 작다. 일본에 감정적으로 발목이 잡혀있는 동안은 진정한 광복도 독립도 아니다.

삼성전자의 성공은 일본기업의 강점을 철저히 연구, 모방한 결과다. 삼성전자 중역들도 “삼성의 힘은 일본에 대한 이해에 있다”고 고백한다. 일본 없이 오늘의 삼성은 없었다는 말이다. 삼성전자는 한국에서 일제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핵심부품과 기계장비를 일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삼성은 소니를 추월했다. 일본이 몇 백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유도를 한국인이 배우면 일본을 이길 수 있다. 유도는 상대의 힘을 이용해 이기는 기술이다. 한국인이 그 기술을 배우면 씨름의 기초 덕분에 유도를 능가하는 새 기술이 나온다. 삼성이 일본의 힘을 이용해 일본을 이긴 것처럼. 한국에서 천대받고 기량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도공들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서 어떻게 되었나. 심수관을 보라. 일제 때 징용 간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어떻게 되었나. 일본인 이상으로 일본적 경영을 해 일본인을 놀라게 한 MK 택시회사나 흥업은행 같은 기업을 탄생시켰다. 일본과 같은 문화적 조건에서 뛴다면 한국인은 결코 일본인에 뒤지지 않는다는 증거다.

오늘 독도문제가 저렇게 꼬인 것은 한국이나 해외한인사회에 독도 운동가만 많았지 독도 연구가는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에 당하지 않으려면 이제부터라도 일본을 배우고 연구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문화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에 일본의 장점은 한국인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독도를 넘어 일본을 이기는 길이 아닌가 싶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