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생각을 많이 하라고 하면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죠?'라고 되묻는다. 그럼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수도권에 주택을 신규공급하겠다는 기사를 봤다고 치자. 그럼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공급이 많아지니 부동산값이 떨어지겠네. 주택을 많이 지으면 건설회사가 바빠지겠군. 건축자재 회사도 덩달아 좋아지겠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보자. '건설회사는 경쟁을 해야겠지만 도시가스공급회사는 독점이니까 얼마나 좋을까.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불러주겠지.' 여기서 생각을 멈추지 말고 신도시를 살펴보면서 판교는 대한도시가스, 파주는 서울도시가스가 공급한다는 데까지 연결시켜야 한다."

한국의 '투자 귀재'로 불리는 강방천 에셋플러스 회장의 말이다. 그는 IMF 시절 종자돈 1억 원을 약 2년 만에 혼자 힘으로 무려 156억 원으로 불려 화제를 모은 인물이다. 그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요점은 '어디로 돈이 흘러들어갈까'를 상상해보라는 것. 그는 99년 홈쇼핑이 성행하면 택배업계가 호황을 맞을 것으로 예상, 한진주식을 대거 매입해 100억 원을 벌었다. 그의 성공비결은 무엇인가. 신문 정독이다. 기사 한 줄을 읽고 또 읽으면서 돈의 흐름을 예상하는 것이다.

세계 최고부자 워런 버핏은 하루의 3분의 1을 투자 관련 자료와 책 및 신문을 읽는 데 보낸다. 버핏은 지난 5월 필라델피아의 한 중학생이 "세상에 알아야 할 게 많은데 뭘 읽어야 합니까"라고 묻자 "먼저 신문부터 읽어라"고 권했다. 미국의 부동산재벌 도널드 트럼프도 "트렌드 변화를 아는 데 신문만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지식시대에는 지식이 돈이고 비즈니스이며 신문은 거대한 지식산업이다.

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신문광이었다. 그는 외국 체류 중에는 지인들에게 러시아 신문을 보내달라고 읍소할 정도였다. 신문에 대한 집착이 도박 중독처럼 처절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신문을 읽지 못하면 독자 마음을 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뿌리깊게 박혀 있었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백치’ 등의 작품은 신문에 났던 범죄 기사에서 소재와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신문은 영감과 문학적 생명력을 주는 원천이다.

월터 크론카이트는 "신문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별 있는 민주시민으로 기능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설적인 TV앵커지만 자서전과 인터뷰 등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신문읽기를 강조했다. 왜 TV가 아니라 신문인가. 크론카이트는 말한다. "30분짜리 TV뉴스는 신문에 옮겨 놓으면 1면의 절반 정도를 채우는 데 그친다. 이 정도로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신문은 TV 저녁뉴스의 몇 십 배 소식을 전한다. 그것도 깊이와 맥락까지 곁들여서."

신문은 더 이상 새 소식이 아니다. TV에 이어 인터넷에도 밀려 이름과는 달리 구문(舊聞)이 됐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신문을 찾는가. 9·11과 소련의 붕괴를 예견한 세계적인 미래학자 피터 슈워츠의 답이다. "나도 무수한 블로그들을 읽고 있지만 거기에선 정보의 가치와 경중을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다.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내가 꼭 알아야 할 것과 조금 몰라도 될 것을 구분하는 게 혼동된다. 신문을 보면 이런 게 한눈에 들어온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정보의 양 이상으로 중요한 건 정보의 질이다. 또 정보를 얻는 방법이다. 고급정보란 단순지식이나 속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세상의 흐름을 이해하고 분석 및 예측할 수 있는 판단력과 통찰력을 주는 정보를 말한다. 내일(29일) 지령 8,000호를 맞는 한국일보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도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