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잘린과 나는 선거에서 졌을 때 너무나 충격이 컸다. 우리 부부는 정말 백악관에 4년 더 생활하기를 원했다. 할 일이 너무 많았는데 계획 세워놓은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때 내 나이 56세. 은퇴하기에는 젊었다."

"고향 조지아주 플레인즈에 돌아와 보니 부채가 100만 달러나 됐다. 땅콩농장을 팔아야 했다. 딸 에이미는 공립학교에 보냈다. 우리는 완전히 평범한 시민생활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했다. 나는 내 인생을 다시 살펴보았다. 앞으로 25년은 더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25년을 내다본 인생설계를 시작했다."

지미 카터의 자서전 '나이 드는 것의 미덕(The virtues of aging)'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카터는 이 책에서 현직 대통령이라는 프리미엄을 갖고도 재선에 패배한 후의 참담한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미국대통령에서 하루아침에 50대 '명퇴자'로 전락한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정치적 영향력인가, 아니면 대통령 연금과 강연 수입인가. 해답은 그의 이임사에서 찾을 수 있다. "저는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이라는 호칭보다 위에 있는 유일한 호칭, 곧 시민이라는 호칭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통령의 짐을 내려놓습니다." 평범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명연설이었다.

카터는 퇴임 후 약속대로 봉사하는 시민의 길을 일관되게 걸었고 '가장 성공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찬사를 듣게 됐다. 카터 센터를 설립, 국제적 분쟁의 평화사절로 활동하거나 집 없는 이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에 참가하는 등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활용해 갖가지 사업을 벌였다. 그는 봉사활동에 박차를 가하면서 무능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자학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그는 자서전에서 "어느 날인가 평범한 미국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나를 발견했고 나이든다는 사실이 이렇게 값진 또 하나의 인생을 만들어준 것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카터는 60대 중반부터 봉사활동 외에 새로운 취미활동과 운동에도 눈길을 돌렸다. 스키, 플라이 낚시, 조류 탐사, 테니스, 사냥 등을 새로 배웠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 즐겼던 달리기, 자전거 타기, 소프트볼 등은 횟수를 줄였을 뿐 포기하지 않았다. 저술에도 왕성한 의욕을 보였다.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신문을 본 다음 바로 집필 작업에 들어간다. 오전 8시에 아침을 먹은 뒤 11시까지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이렇게 흐트러짐 없이 저술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퇴임 후 펴낸 책이 시집을 포함해 모두 18권에 이른다. 자서전 ‘말벌집’은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포함되기도 했다.

몇 년 전 뉴욕타임스는 은퇴특집을 내면서 카터의 생활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Never been better)'는 제목을 붙여 커버스토리로 실었다. 언론인 바바라 월터스가 "인생에서 최고 시기는 언제였나요"라고 물었다. 카터는 "바로 지금이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마치 은퇴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은퇴 후의 삶에 더없이 행복해 했다.

1981년 대선 패배 후 백악관을 떠나기 전에 가장 먼저 그를 기다렸던 것은 미국은퇴자협회의 회원 통지서였다. 카터는 시니어 복지단체의 회원이 되어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기에는 아직 너무 젊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후 펼쳐질 자신의 미래를 인정하기 싫었고 나이가 먹는다는 사실조차 두렵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 한 가닥 용기와 희망을 준 것은 바로 그를 늙게 만든 세월의 가르침, 나이의 미덕이었다고 회고한다.

하늘은 해가 저물 때 가장 빛난다. 일상에서 수행해야 할 의무, 부질없는 욕망에서 다 벗어난 인생의 황혼기야말로 가장 빛나는 시기다. 카터는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를 어떻게 열어야하는지 우리에게 모범답안을 보여준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