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퍼져있는 화교는 5천만 명이 넘는다. 그중 4,200만 명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등 동남아에 몰려있다. 동남아 상권은 이들이 완전 장악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화교는 전체인구의 5%에 불과하지만 기업의 70%를 갖고 있다. 태국의 주요 은행은 거의가 화교 소유다. 대만과 홍콩을 포함한 아시아의 500대 화상(華商)기업이 현금화할 수 있는 자금은 2조 달러로 추산된다. 한국 외환보유액의 10배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화교가 동남아경제를 장악한 이면에는 나름대로 터득한 생존비결이 있다. 첫째 원주민과 동업하되 자신들이 직접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밖에 드러난 사업체의 얼굴은 원주민이다. 화교의 이런 상술을 동남아에선 ‘알리바바’라고 부른다. 알리바바는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알리’와 ‘바바’라는 이름을 나눠 갖는다는 뜻이다. 둘째 장사를 하되 가급적이면 소매상을 하지 않고 도매상을 목표로 뛴다는 점이다. 소매상은 원주민과 경쟁하는 것이 눈에 띄어 잘못하면 증오감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가능한 한 자손들을 원주민과 결혼시켜 현지문화에 동화한다는 자세다. 화교끼리만 모여 살면 고립되고 결국 현지인의 저항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터득한 화교의 생존비결은 동남아 경우와는 다르다. 현지주민, 특히 백인여성과의 결혼은 주류사회의 반발을 사기 때문에 화교들은 동족끼리만 결혼했고 백인사회는 넘겨보지도 않았다. 또한 캘리포니아에서 골드러시가 일어났을 때 금광을 사들였다가 백인들에게 린치 당해 80여 명이 죽은 사건이 발생한 이후 백인업종에는 손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78년 등소평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인의 해외진출이 급증하면서 화교사회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개혁개방 기간에 중국 본토에서 600만 명이 해외로 이주했는데 이들은 기존 ‘구(舊)화교’와 구별돼 ‘신(新)화교’로 불린다. 구화교의 대부분이 아시아국가로 이주했다면 신화교는 미국과 캐나다 및 유럽으로 진출지역을 넓혔다. 특히 북미의 신화교는 지난 30년간 중국 발전에 힘입어 경제력이 막강해졌다. ‘세계의 공장’인 모국과의 무역 및 상업의 상당부분을 떠맡은 덕이다. 과거 화교라 하면 자장면집 같은 중국식당을 연상했지만 이젠 옛말이다. 전문직 신화교가 늘면서 백인업종에도 뛰어들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도 급속히 키워가고 있다.

최근 어느 한국신문에 따르면 미국 신화교들이 뉴욕한인상권을 속속 접수 중이다. 뉴욕 최대의 코리아타운인 플러싱지역의 한글간판은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에 화교가게는 급증한다. 코리아타운 내의 큰 길인 메인 스트릿의 경우, 그 많던 한인야채가게는 이제 종적을 감췄다. 한인가게 리스가 끝날 때쯤이면 여러 명의 화교들이 돈을 모아 가게건물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리스가 남아있어도 건물을 매입한 후 렌트를 대폭 올리면 한인들은 빈손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플러싱뿐만 아니라 미국 곳곳이 이런 수법에 밀려 차이나타운화하고 있다.

토론토의 경우 이런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만약 화교들이 오래 전에 블루어 선상에 뿌리내렸다고 가정하면 ‘한인타운’을 어떻게 발전시켰을까. 만약 화교들이 노스욕에 차이나타운을 조성한다면 어떤 식으로 개발할까. 렌트가 비싼 영 선상을 중심으로 각자 흩어져 장사할까, 아니면 영 인근지역을 개발해 대규모 상가를 지어 함께 장사할까.

중국인은 자식이 혼자 사업을 하겠다면 “힘을 합쳐야지 무슨 재주로 혼자하나”며 말린다고 한다. 반면 한국인은 누가 동업을 하려하면 “구멍가게라도 혼자 해야지 무슨 소리냐”며 말린다. ‘혼자’의 성적표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만나야 할 때가 있고 헤어져야 할 때가 있다. ‘혼자’해야 할 때가 있고 ‘함께’해야 할 때가 있다.. ‘플러싱의 굴욕’은 우리에게도 교훈적이라고 본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