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한 나치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1960년 이스라엘 특공대에 잡혔을 때 특공대원들을 놀라게 한 것이 있었다. 아이히만의 ‘두 얼굴’이다. 이스라엘 첩보대장 이샤할레르는 “아이히만이 너무나 비굴하고 의심 많고 겁쟁이인 것은 상상 밖”이라며 “이런 비겁한 자에게 유대인들이 대항하지 못 하고 600만 명이나 죽어갔다는 것은 원통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나폴레옹도 세인트헬레나에 유배되었을 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굴했다고 한다. 어린애처럼 허둥지둥하고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보통사람보다 더 초조해하며 우울한 나날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에 “개도 직권으로 짖으면 사람이 복종한다”는 대사가 나온다. 권력은 인간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성형수술한다. 하지만 본 얼굴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있다.
엊그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보면 한때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였던 사람이 저렇게 비굴하게 변했나 싶을 정도다. “대통령 못 해 먹겠다”고 큰소리쳤던 배짱은 어디로 갔는가. 노 전 대통령은 ‘저의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에서 "집 바깥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면서 "저의 집은 감옥"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의 불찰에서 비롯된 일이기에 이런 상황을 불평해야 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사생활 또한 소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런 글을 올린 것은 취재경쟁으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보도되는 데 따른 불만 때문이다.
한 번 대통령은 영원한 대통령이다. 잘했든 못 했든 역사에 길이 기록될 대통령으로 국민의 실망과 분노를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과연 이런 식의 ‘대국민 호소문’을 낼 수 있을까. ‘호소문’을 내기 전에 “검찰에 자진출두,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하는 게 순서가 아닌가. 떳떳하다면 왜 집 바깥에 나가지 못 하는가. 샘플과 실물이 다를 때 사람은 배신감을 느낀다. 노 전 대통령이 국정운영에서 낙제점을 받으면서도 임기를 채울 수 있었던 것은 ‘도덕성’ 덕이다. 나름의 원칙을 지렛대 삼아 일그러진 현실을 거부하면서 고난을 자청했던 정치이력 덕에 ‘바보 노무현’이란 애칭을 국민들로부터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바보’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면서 ‘노사모’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안방에서 한가한 소리만 한다. 국민과 코드를 맞추기보다는 ‘패밀리’의 사생활에만 코드를 맞추고 있다.
사람 됨됨이를 알아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 사람의 친구들을 살피는 것이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나의 친구’는 ‘나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시절이나 퇴임 후에도 박연차라는 신발공장 사장과 가장 친하게 지냈다. 박연차는 어떤 사람인가. 80년대 마약과 도박 및 반사회적 행태로 감방까지 갔던 사람이다. 과거 한때의 과오를 언제까지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이번 검찰수사 내용을 보면 옛날 버릇은 여전한 걸로 나와 있다. 노 전 대통령이 그런 파렴치한 기업인과 가족처럼 지냈다는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잠시 모든 국민을 속일 수 있고 언제까지나 일부 국민을 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국민을 언제까지나 속일 수는 없다.” 노 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다는 링컨 대통령의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이 부를 때까지 집에서 초조하게 기다릴게 아니라 하루빨리 진실을 밝혀야 한다. 전직 대통령으로 법의 심판대에 서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수모겠지만 그보다 더 비참한 것은 아내를 내세우며 자신은 뒤로 빠지려 한다는 점이다. 보통사람보다도 더 비굴한 모습이다. 노 전 대통령은 더 이상 게임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노사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싶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