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그네가 낯선 마을에 왔다. 때마침 길가에 앉아있는 할아버지를 보고 물었다. “할아버지, 여기 사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러자 할아버지는 “당신이 먼저 있던 곳의 사람들은 어땠느냐”고 반문했다. “형편없습니다. 야비하고 툭하면 다툽니다.” 이 말을 듣고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 고장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못되고 야비한 사람들이지.” 얼마 후에 또 다른 나그네가 지나가면서 할아버지에게 똑같이 “이곳 사람들은 어떻습니까?”하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있던 곳 사람들은 어땠느냐”고 똑같이 되물었다. “내가 만난 그 고장사람들은 아주 정직하고 너그럽습니다.” 이 말을 듣고 할아버지는 “이곳 사람들도 정직하고 마음이 너그럽다오”라고 답했다.
세상은 보는 사람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같은 사람이 동일한 사물을 보는 경우조차 접근방법에 따라 가치판단이 같을 수는 없다. 예컨대 유리컵 속에 절반쯤 물이 찼을 경우 사람에 따라 또는 보기에 따라 “물이 절반이나 찼다”고 대견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겠고 “절반밖에 차지 않았다”고 아쉬워할 수도 있다.
세계경제전망도 그렇다. 전문가에 따라, 이들의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세계경기의 자유낙하는 끝났다. 미국은 물론 유럽 일부에서도 확실한 회복신호가 있다”고 낙관론을 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패닉은 없지만 일본식 장기불황 가능성이 있다”고 비관적인 사람들도 있다. 증시를 보는 눈도 같지 않다. ‘유럽의 워런 버핏’이라는 앤서니 볼튼은 “새로운 강세장은 이미 시작됐다”며 “지금은 코뿔소처럼 뛰어들 때”라고 말한다. 반면 세계최대 독립 헤지펀드인 맨그룹의 피터 클락사장은 “최근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만 다시 악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헬리콥터 머니’의 후유증인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앞으로 물가가 폭등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있는 반면 유동성이 많이 풀렸지만 금융기관들이 돈을 끌어안고 있어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전문가들의 ‘말잔치’를 보면서 경제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게 있다. 세계경제가 바닥을 쳤다는 게 정설로 굳어졌다는 점이다. 불과 반 년 전만해도 제2의 대공황을 예측하느라 경제학자들이 설전을 벌였던 사실을 상기하면 엄청난 반전이다. 그간 세계경제를 가장 비관적으로 보던 사람 중 하나인 조지 소로스조차 최근 ‘낙관론자’로 돌아선 것을 보면 ‘오지도 않을 늑대가 왔다’는 허위경보에 지구촌이 너무 놀란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사스 공포가 엄습한 6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사스는 사람뿐 아니라 캐나다사회 전체를 감염시켜 집단적 노이로제상황으로 몰고 갔다. 국내외 행사들이 잇달아 취소되고 중국인 기피현상까지 생겼다. 신종플루도 그렇다. 언론은 발생 초기 ‘바이러스의 용광로인 돼지가 부른 재앙’이라며 호들갑을 떨었고 세계보건기구는 “수백만 명이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감염자는 1만3천 명, 사망자는 100명 정도다. 유행성 독감의 사망률인 7%에 훨씬 못 미친다. 전염병 대재앙 예측이 과장된 이유에 대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언론의 과잉보도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국제보건기구와 각국 정부들의 재앙경고를 언론이 외면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결국 개개인의 판단에 달린 문제다. 그런 정도의 전염병은 인간 힘으로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이 많은 사회에 재앙은 없다.
경제위기 재앙론도 그렇다. 반 년 전 언론에 난무했던 ‘제2의 대공황’은 이제 자취를 감추었다.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은 경기부양책이 어쨌든 효과를 냈다. 세계경제가 조기 회복된다는 소리가 아니다. 실물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증시가 다시 추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경제재앙 예측은 빗나갔다는 것이다. 30년대와 달리 지금 세계는 공황을 제어할 힘이 있다. 생각보다 위기에 잘 대처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비관적인 경제전망에 너무 무게 둘 필요가 없다. 경제란 결국 마음이다. 긍정적사고가 경제를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