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출신의 헤르만 불은 세계등반사에서 전설적인 인물이다. 인류 최초로 배낭도 산소통도 모두 집어던지고 혈혈단신으로 8천m급 산의 정상에 올랐다가 살아서 돌아온 사람이다. 불멸의 대기록이다. 그는 29살 때인 1953년 독일·오스트리아 낭가파르바트 원정대원으로 발탁, 그해 여름 꿈에도 그리던 산에 오른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 원정대장은 악천후로 등정을 포기한다며 귀환령을 내린다. 그 순간 헤르만 불은 모든 장비를 내던지고 홀로 정상을 향해 사라진다.
그가 정상에 선 것은 7월3일 오후 7시. 귀환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지만 캄캄한 밤에 홀로 하산을 시작한다. 원래 하산은 등정보다 힘들다. 설상가상으로 아이젠 한 짝이 등산화에서 벗겨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남은 장비라고는 등산용 스틱 2개와 아이젠 한 짝뿐이다. 정상 부근에는 잠시 앉아 있을 공간도 없다. 그는 정상에 꼿꼿이 선 채로 ‘죽음의 밤’을 보낸다. 세계등반사상 가장 유명한 비박이다.
헤르만 불이 홀로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마지막 캠프로 돌아오는데 걸린 시간은 41시간. 약 이틀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 한 채 혹한 및 강풍과 싸워야 했고 산소결핍증으로 사경을 헤맸다. 20대 청년이 노인의 얼굴로 변할 정도로 사투를 벌이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는 낭가파르바트 초등자(初登者) 영예 때문에 원정대장의 명령을 무시하고 홀로 정상을 향해 진군했는가. 그렇진 않다. 2개국 원정대원으로 발탁됐을 때 자신이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준비해왔는지를 섬광처럼 깨달았다고 한다. 당시 그가 남긴 한 마디는 산악계의 명언으로 기록된다. “나는 준비했습니다. 내 생애는 당신을 만나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내가 아직 당신을 몰랐을 때에도 모든 것은 그 준비였습니다.”
헤르만 불은 23살이 되기 전에 134개의 봉우리에 올랐다. 남들은 여름에 오르는 암벽을 눈과 얼음이 뒤덮인 겨울에 올랐다. 절벽 같이 가파른 봉우리 25개를 33시간 만에 주파하기도 했다. 언젠가 만날 ‘궁극의 산’을 위해 준비하고 또 준비했다. 그리고 정상이 보이는 순간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는 낭가파르바트 한 곳에 올인했다. 33살로 요절한 그에게 그 산은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에게 그 산은 생명이었다.
며칠 전 여성산악인 고미영씨가 바로 그 산에서 추락사했다. 정상에 오른 뒤 하산 도중 탈진상태에서 실족했다고 한다. 고씨는 2006년 히말라야 14좌 등정에 나선 지 2년9개월 만에 11번째 고봉인 낭가파르바트에 올랐다. 3개월에 고봉 한 개씩을 오른 셈이다. 3개월이라면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고소(高所) 적응기간에 불과하다. 그런 ‘쉬는 시간’에 내로라하는 산악인들이 일생에 한 번 오를까 말까한 고봉을 등반한 것이다. 고씨가 이렇게 바쁘게 움직인 것은 오은선씨와 여성 최초의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놓고 속도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속도전에는 고봉의 베이스캠프를 오가는 헬기까지 동원됐다. 허영호씨의 말대로 산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너무 무리하게 경쟁하다가 비운을 맞은 것이다.
등산하면서 살아남는 비결은 여러 가지이지만 비극을 당하는 비결(?)은 간단하다. 무리를 하면 꼭 사고가 나게 마련이다. 겸허한 자세는 알피니스트의 생명이다. 등산은 체력을 단련하는 운동이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자신의 분수를 파악하는 훈련이기도 하다. 험한 코스를 오르는 용기보다 무리라고 판단되면 중도에서 물러설 줄 아는 용기가 진짜 용기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는 낭가파르바트에서 친동생을 잃는 등 수많은 동료가 산에서 추락하는 현장을 지켜봤다. 이들을 애도하기 위해 쓴 책 ‘죽음의 지대’에서 메스너는 "인간은 경건함을 잃는 순간 추락한다"고 말했다. 산에 갈 때의 경건함을 내려올 때 잃기 쉽고 결국 죽음의 심연으로 떨어진다는 얘기다.
히말라야에서는 산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산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내던진 사람에게 정상을 허락한다. 정복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경외하는 사람을 품는다. “나는 준비했다. 결단했다. 그리고 하늘에 맡겼다.” 영원한 히말라야의 사나이 헤르만 불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