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로키산맥은 절경이다. 그 중에서도 밴프 쪽에서 본 로키가 가장 아름답다. 밴프에서 로키의 절경을 보려면 설퍼마운틴의 정상에 가야한다. 하지만 이 산은 해발 2,300m로 구름이 많이 끼고 비가 오는 경우가 있다. 흐리고 비오는 날 밴프에 도착하면 로키의 경치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실망하는 관광객들이 많다.
그러나 케이블카가 비바람을 헤치고 산 정상에 도달하면 눈앞에 전개되는 전혀 다른 세상에 절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햇살과 함께 구름바다가 펼쳐진다. 산 아래의 세계와 산 위의 세계가 이렇게 다른가. 별세계가 따로 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1년 전 리먼브러더스 파산 당시의 경제상황과 요즘의 경제를 비교하면 ‘전혀 다른 세상’이다. 약간의 과장을 보탠다면 ‘별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중환자가 퇴원하면 병원생활을 잊어버리듯 적지 않은 이들이 금융위기 발생 당시의 악몽을 뇌리에서 지운 것 같다. 그래서 현 경제상황에 대해서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그게 아니다. ‘금융쓰나미’ 발생 전후의 기사 몇 개를 소개한다.
“웬만한 강심장으론 버티기 힘든 때다. 들려오는 소식은 모두 우울하다. 신용경색의 재연, 국제유가 급등, 주가 폭락...투자자와 비즈니스 리더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위기를 절감하고 있다.”
“세계금융시장이 초토화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이 신용경색에 따른 글로벌 금융시스템의붕괴위기를 느껴 긴급 유동자금을 사실상 무제한 지원하겠다는 카드까지 꺼냈으나 시장분위기는 공포일색이다.”
“월가 투자은행들이 대거 출연한 희대의 비극 ‘금융제국 쇠망사’의 다음 희생양은 누가 될 것인가. 어제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월가의 관심은 다음에 쓰러질 도미노에 맞춰져 있다.”
“지난 한 달간 세계금융시장은 사실상 괴멸상태에 빠졌다. 10월 초에는 ‘금융허브’로 잘나가는 듯했던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가 나가떨어졌다. 10월13일에는 영국정부가 7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3대 은행을 국유화했고 같은 날 독일 프랑스 등 여타 유럽국가들도 총 2조4천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안을 발표했다.”
연일 새롭게 조성되는 공포분위기에 모두가 가슴을 조아렸다. 금년 3월 금융위기가 실물위기로 전이되면서 사태는 더욱 급박해졌다. 미국 다우지수는 리먼 파산 이후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 6,500대로 주저앉았다. 유럽과 중국증시도 폭락했고 일본 니케이지수는 26년 만에최저치로 떨어졌다. 세계금융기관 간에 달러조달이 힘들어지면서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이 국가부도설에 시달려야 했다. 불과 반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굳게 닫혔던 은행금고가 열려 대출의 숨통이 트였다. 원유값은 절반수준이며 부동산시장은 활기를 되찾았다. 한때 자동차딜러들이 연쇄도산했지만 요즘은 거의 없다. 경제 펀더멘털도 많이 좋아졌다. 블룸버그 재무상태지수에 따르면 금융기관 신인도는 2007년 11월 이래 최고수준이다. 은행이 아직 늪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건 아니지만 1년 전에 비해 훨씬 건강해졌다. 기업들도 구조조정을 본격화, 체질을 강화 중이다. 그런 얘기는 대기업에 국한된 일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제2의 대공황을 들먹이던 때를 떠올리면 엄청난 반전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경제의 지뢰밭이 없는 게 아니다. 미국의 부실 상용부동산담보대출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며 세계시장의 큰 손인 미국소비자들이 돈을 쓰지 않아 중국을 비롯, 한국과 일본 등 주요 수출국가에 큰 타격을 줄 전망이다. 경제가 바닥을 쳤다고는 하지만 W자형 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 내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분명한 것은 ‘100년만의 위기’를 1년 만에 벗어났다는 점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생각보다 더 안정돼 있고 위기대응력력도 뛰어났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희망보다는 절망을 더 많이 얘기한다. 그렇게 비관적이고 주눅들 필요가 없다. 경제는 생각보다 빨리 호전되고 있다. 어떤 눈으로 경제를 보느냐에 따라 승자가 될 수도 있고 더 깊은 패배의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