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어떤 낚시꾼이 바다낚시를 하다가 6천만 엔(70만 달러) 상당의 금괴 한 덩어리를 건졌다. 그는 주인을 찾아달라며 이 금괴를 경찰에 갖다 맡겼다. 반 년이 지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경찰은 “법에 따라 당신이 소유권을 갖는다”며 금괴를 낚시꾼에게 돌려주었다. 하지만 그는 인수를 거절했다. 땀 흘려 번 돈이 아니기 때문에 가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90년대 한국 신문에 보도되었던 뉴스다. 일본인들의 정직성을 말할 때 가끔 인용되기도 한다. 일본인이란 단어를 접할 때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 중 좋은 것을 말해보라면 정직, 친절, 청결, 근면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비록 반일감정을 가진 한국인이라도 일본인의 이런 점은 인정한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데이빗 핼버스탬 등 미국의 지식인들은 그간 일본인을 ‘세계의 모범생’으로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면 일본인이 원하는 이상적인 자화상은 무엇일까. 그들은 정직이나 친절, 근면 중 어느 덕목을 가장 중시할까. 일본의 유력지 아사히신문이 이 문제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다. 아사히는 지난 78년부터 매년 한 차례씩 ‘정기국민조사’를 해왔는데 전국의 3천 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일본인의 평균적 사고와 가치관을 대변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난 78년의 경우 20대 응답자들은 자기 자신이 정직한 사람으로 비쳐지길 가장 원했다(24%). 그 뒤를 친절한 사람, 신념 있는 사람, 평범한 사람 순으로 이어갔다. 그러나 24년이 지난 2002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정직한 사람은 16%로 격감하면서 2위로 물러나고 친절한 사람(19%)이 1위를 차지했다. 50대 응답자들도 내용이 바뀌었다. 78년 1위(32%)에 올랐던 정직한 사람은 2위(24%)로 주저앉은 반면 평범한 사람(28%)이 1위를 차지했다. 신념 있는 사람은 78년 15%를 넘었지만 2002년에는 10% 밑으로 추락했다.

새해 들어 연일 터지는 ‘도요타참사’를 보면서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정직성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일본인들이 어떻게 저런 식으로 국가적인 위기를 얼렁뚱땅 넘기려 했을까 하는 점이다. 원가절감을 위해 공통부품을 사용하는 차종을 늘리고, 글로벌 생산체제를 구축하면서 품질관리에 허점이 생긴 것을 주된 이유로 들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부품 조달과 생산을 모두 일본에서 하는 하이브리드 차량 프리어스도 리콜대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사히 여론조사를 뒤늦게 접하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30년간 보통 일본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축소지향적으로 변한 것이다. 정직하고 ‘튀는’ 사람보다는 친절하고 모나지 않은 사람으로 비쳐지기를 원하는 응답이 크게 늘어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타고난 상인이라는 말을 듣는 일본인들은 그간 상인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정직과 신용을 1순위에 올려놓았다. 학교나 회사에서 정직하게 사회생활을 하라고 강조하고 최고경영자들 스스로 근검하게 사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기업들은 “불만제품에 관용을 베푸는 건 애국도 미덕도 아니다. 제발 사소한 불만이라도 제기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메이드 인 재팬’이 세계적인 신뢰성을 갖게 된 이유다.

하지만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면서 한때 미국을 돈으로 다 사들일 만큼 호기를 부렸던 일본인들의 어깨는 쳐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좀체 호전되지 않은 경제상황은 그들의 가치관마저 바꿔놓았다. 근년 들어 퇴조현상을 보이는 사무라이정신도 이와 연관이 있지 않나 싶다. 7~8년 전 니쇼이와이라는 회사의 상무가 탈세로 조사받게 되자 자기만 없어지면 회사가 살아날 것이란 생각에 자살했다. 그의 유서는 해외에서도 화제가 됐는데 “개인은 유한하고 회사는 영원하다”고 쓰여 있었다. 외국인들이 보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런 정신이 일본을 경제대국, 품질왕국으로로 만든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에서 사무라이정신이 부활돼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예전의 정직성이 부활되지 않는 한 일본제품에 대한 신뢰도 부활은 힘들 것이란 얘기다. 한국은 어떤가. 국제사회에서 ‘정직한 코리언’의 이미지가 형성되지도 않았는데 일본의 위기가 기회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이런 오판의 가속페달부터 리콜해야 한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