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얘기를 꺼내본다.

사실 필자는 남의 글이나 책 인용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특별한 소신이나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순전히 팩트(fact) 위주 무미건조한 기사만을 쓰다가 생긴 글버릇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 얘기다. 기원전 300년경 진(秦)나라에 소양왕이 있었다. 훗날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황제가 된 진시황의 증조할아버지다. 당시 열국(列國)은 저마다 합종연횡(合從連衡)을 통해 천하제패의 꿈을 키워갔다.

소양왕은 재상 범수의 진언에 따라 제(齊)나라 실권자인 왕후 태사씨를 시험하기로 마음먹었다. 밀명을 받은 사신이 옥련환(玉連環: 옥으로 이어 만든 목걸이)을 품에 안고 제나라로 떠났다.

사신은 태사씨에게 옥련환을 바치며 소양왕의 말을 전했다. “제나라에 이 옥련환 고리를 풀 수 있는 인재가 있다면 우리 진나라는 제나라를 더욱 받들어 모시겠다 합니다.”

옥고리를 푼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왕후는 그러나 일각의 머뭇거림도 없이 “금장도를 가져 오너라” 분부했다. 단번에 옥련환 고리를 끊었다. 일도양단(一刀兩斷). 이를 전해들은 재상이 소양왕에게 아뢰길 “과연 여걸 중 여걸입니다. 제나라를 범하기는 힘들 듯하옵니다.”

고대 그리스 역사는 신화와 뒤섞여 경계가 불분명하다. 때론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 단군할아버지가 실재했던 인물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일. 기원전 1,500년경이니 신화시절이 맞겠다. 소아시아에 프리지아(Phrygia)라는 나라가 있었다.

왕위다툼 내란이 일어났다. 신은 마차를 타고 프리지아에 온 사람이 왕이 된다고 말했다. 때마침 고르디우스(Gordius)란 이가 마차를 타고 고향에 들렀다가 벼락출세를 했다. 고르디우스왕은 그 마차를 지키려고 바퀴를 밧줄로 단단하게 묶어 놓았다.

바퀴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지배할 것이란 신탁(神託)이 빠르게 펴져나갔다. 난다 긴다 하는 용사와 현자들이 모두 나서 힘과 지혜를 쏟았지만 풀릴 매듭이 아니었다. 이게 바로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문명은 절정을 구가했다. 그러나 도시국가 간 내부 패싸움으로 골병들고 말았다. 기원전 431~404년 27년간 계속된 펠로폰네소스전쟁 이후 그리스의 자랑이었던 화폐경제는 문란해졌고 활짝 꽃피었던 직접민주주의는 궤변만 남기고 시들어버렸다.

하찮은 북쪽 변방 마케도니아라는 나라가 그리스를 유린했다. 반목하던 도시국가들이 어마뜨거라 서로 손잡고 막아보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가 죽고 혈기방장(血氣方壯)한 아들 알렉산더가 왕위에 올랐다.

20대 초반의 그는 그리스를 넘어 광대한 페르시아로 눈을 돌렸다. 대군을 이끌고 보스포러스해협을 넘어 소아시아로 진격하다가 이미 망해 사라진 전설의 나라 프리지아에 도착했다. 옛 수도 고르디움 한복판에 솟은 신전엔 그 유명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있었다.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지배한다’는 신탁도 여전했다.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알렉산더가 갑자기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내리쳤다. 쾌도난마(快刀亂麻). 그리고 외쳤다.

“나야말로 아시아의 왕이다!”

후세 호사가들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알렉산더의 자작극이라 폄훼하기도 한다. 아무 것도 아닌 매듭을 신탁이라는 거창한 용어까지 동원해 자신의 아시아정복 욕구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한 선전선동술이라는 것.

얘기가 너무 늘어졌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나 옥련환 일화가 사실이냐 아니냐가 무슨 문제랴. 혹시 일도양단 또는 쾌도난마 유혹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노파심에서 말을 꺼냈다.

지금 토론토 한인사회엔 ‘고르디우스’보다 훨씬 복잡한 매듭이 여럿 있다. 단칼에 끊어버리고 싶은 욕망이 솟구칠 것이다. 가능할까? 그렇게 쉽게 풀릴 매듭이라라면 애초에 생겨나지도 않았을 터.

지금은 한 발 물러서서 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는지 곰곰이 따져볼 때다. 우리 편만이 아닌 적과 함께라도 머리 맞대고 풀어야 할 때다. 일도양단, 쾌도난마 할 건 매듭이 아니다. 분쟁 당사자들 마음속에 충만한 전투의지와 사리사욕이다. 알렉산더대왕·태사씨왕후 흉내는 아무나 내는 게 아니다.

실협과 협동조합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수많은 동포들의 눈을 떠올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