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은 참 편하다.
1등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 욕먹을 일이 없다. 마케팅에 ‘미투(Me too)전략’이라는 게 있다. 선두 흉내만 내면 제 먹을 몫 챙길 수 있다. 후발주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우면서도 결과가 보장되는 기법. 따라서 전략이랄 것도 없다.
그러나 배 아픈 건 2등의 숙명. 고통은 당신 홀로, 영광은 함께? 어림없다. 앞 발자국만 따라가며 절체절명(絶體絶命)의 기로에서 고독한 선택을 해보지 않은 2등에게 돌아갈 꽃다발은 없다. 앞선 자가 갈채를 받을 때 아픈 배 움켜쥐고 참아야 한다.
이때 2등은 치명적인 유혹에 빠지곤 한다. 이른바 ‘시비(是非)마케팅’. 속된 말로 ‘물귀신작전’이다. 잘나가는 1등에게 사사건건 시비 걸며 붙잡고 늘어진다. “역시 2등감밖에 못 돼~” 라는 눈총이야 피할 수 없지만 이 또한 별로 손해날 게 없는 장사다.
운 좋게 상대방이 평정을 잃고 대응해오면 그건 대성공이다. 대등하게 싸우는 모습을 노렸는데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우리는 이런 2등을 3류라 부른다. 안타깝게도 3류 함정에 빠질 어리석은 1등은 없다.
내친 김에 영화 ‘아마데우스’ 얘기를 해보자. 당대의 신동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2인자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애증을 그렸다. 살리에리는 평생 1인자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다가 질투심을 이기지 못해 끝내 모차르트를 독살하고 만다는 내용이다. 이후 극단적인 2인자 심리상태를 이르는 용어로 ‘2인자증후군’ 대신 ‘살리에리증후군’이란 말이 광범위하게 쓰이게 됐다.
김연아란 벽을 넘지 못한 아사다 마오를 두고 또 ‘살리에리증후군’이란 말이 되살아났나 보다. 그러나 살리에리와 아사다 마오의 공통점은 그들이 비록 정상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사실. 동시대에 더 뛰어난 천재를 만났다는 게 불운이라면 불운이다.
2등과 2인자, 2류는 의미가 다르다. 2인자를 말할 때 흔히 김종필씨와 중국 저우언라이(周恩來)를 든다. 김종필씨와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의 동업자였다. 결코 상명하복 관계가 아니었다. 김종필씨는 자신의 지분이 있음에도 한 번도 이를 주장하지 않았고 1인자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조신함으로 만년 2인자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저우언라이. 마오쩌뚱(毛澤東)이 유일하게 존경했던 혁명동지였다. 또한 질투의 대상이었다. 저우언라이가 해박한 지식에 치밀한 논리, 혁명열정에 인품까지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저우언라이 역시 평생 마오쩌뚱의 그늘을 벗어나지 않았다. 최고 혁명지도자는 마오쩌뚱이 적격이며 자신에 가장 걸맞은 직분은 ‘최고 참모’라 여겼다 한다. 저우언라이는 2인자였지만 1류 혁명이론가였다.
2등 마케팅을 설명하다 말이 빗나갔다.
‘고백전략’이라는 게 있다. “우린 2등입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객들에게 솔직하게 현실을 인정한 뒤 노력하겠다고 읍소한다. 색다른 건 아니다. 한국의 대한생명보험과 미국 렌터카업체 AVIS가 활용해 짭짤한 효과를 거둔 고전적 마케팅기법이다. 그나마 돋보이는 2등 전략이다.
그렇다면 1등의 대응은? 전략에 앞서 윤리와 책임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게 선두주자의 또 다른 숙명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들 것도 없다. 어느 분야든 고도의 직업윤리, 사회적 책임을 지키는 주역은 리딩그룹이어야 한다.
선두주자가 규범에서 일탈하면 그건 용서받기 힘들다. “어찌 1등이 그런 짓을~”. 그런 면에서 2등은 행복하다. 아무리 빗나간 행태를 보여도 반응은 너그럽다. “어차피 2등인데 뭘~”.
왜 뜬금없이 2등 타령이냐고? 토론토 한인사회에도 다양한 1등과 2등이 존재한다. 최근 언론의 기본마저 팽개친 채 궤도이탈한 어느 교민신문의 3류 시비걸기 마케팅을 보며 ‘살리에리증후군’이 떠올올올랐다.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지울 길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