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에게 총 1,100만 명이 학살당했다. 이들 중 유대인은 600만 명, 비유대인은 500만 명이다. 그러나 그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라고 집요하게 고발하는 민족은 유대인뿐이다. 다른 민족들은 치욕적인 역사를 두 번 다시 떠올리기도 싫어하는데 왜 유대인들만 지금도 동분서주할까. 그들은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민족인가. 아니면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사람들인가.
이스라엘이나 미국 등지에 있는 홀로코스트박물관에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사진들이 많다. 나치가 유대인들을 총살하고 사체를 불태우는 현장사진들도 있다. 특히 워싱턴의 홀로코스트뮤지엄(www.ushmm.org)에서는 나치 만행을 사진 외에 동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식사당번이 운반 중에 흘린 음식을 먹으려고 유대인들이 몰려들어 땅을 혓바닥으로 핥는 장면과 이를 옆에서 지켜보며 조롱하는 게슈타포 등이 다큐멘터리로 상영된다.
유대인수용소 사진과 영상물은 나치에 의해 철저히 통제된 기밀자료다. 그런 사진들이 어떻게 이스라엘당국에 넘어갔을까. 독일정부가 이스라엘정부와 홀로코스트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못난 조상들이 저지른 역사를 속죄하기 위해서다. 독일정부는 자국역사에서 지우고 싶은 나치 만행사진을 자진 공개했을까. 그렇지 않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유대인들의 끈질긴 고발에 두 손을 든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참혹한 사진을 보면 누구나 다시는 저런 비극이 되풀이 돼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유대인들이 대학살박물관을 짓거나 ‘쉰들러리스트’ 같은 대작 영화를 만들어 자신들의 고난을 지구촌에 적나라하게 광고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유대인은 여러 비난에도 불구하고 인류사회에 기여하는 점도 적지 않다. 그 이전에 수난을 발판으로 나라를 세웠고 세계를 움직이는 인재들을 무수히 배출했다. 고난의 역사가 국운 상승의 주춧돌이 된 것이다.
3월은 한국인들에게 고난의 달이다. 7,500명이 희생된 3·1절이 있고 두 명의 애국지사를 잃은 달이다. 10일은 민족의 선각자인 도산 안창호 선생 72주기다. 26일은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다. 두 분 모두 광복의 기쁨을 누리지도 못하고 눈을 감았다. 유대인들이라면 3월의 역사를 어떻게 고발했을까. 유대인들이라면 3월의 핏값을 자녀들에게 어떻게 가르쳤을까.
반일이나 항일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용서하되 잊진 말자는 얘기다. 역사를 망각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캐나다에 사는 우리에게 한국역사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승리의 역사를 기억하기에도 바쁜 세상에 왜 하필 패배의 역사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렇지 않다.
한인사회의 미래인 2세들을 보자. 경술국치를 모르고 월드컵 4강이나 삼성휴대폰만을 기억하는 2세들이 성장해 어떤 사람이 될까. 물론 인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과연 진정한 한국인으로 볼 수 있을까. 뿌리를 모르고 민족의 긍지를 느끼지 못할 때 그들은 아시아인으로 둔갑한다. 중국이나 일본권에 동화한다는 얘기다. 다민족사회에서 튼튼한 민족의 뿌리를 내리지 못할 때 그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1세들은 자녀들에게 캐나다인이면서 한국인이기를 요구하지만 그들은 정신적으론 한국인도 캐나다인도 아닌 무국적상태가 된다.
한국인은 사업수완과 자녀교육열 등으로 ‘동양의 유대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지만 유대인이 가장 중시하는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닮으려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배워도 그만, 안 배워도 그만인 과목이 국사다. 일본의 역사왜곡에는 격분하지만 우리의 역사무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우리가 내팽개친 역사를 남이 왜곡 기술한다고 그렇게도 분노하는가. 남의 역사왜곡만을 질타하는 ‘두 얼굴’에는 왜 분노하지 않는가.
전 토론토대 동양학교수인 유재신 목사는 “북미 한인이민역사가 100년이 넘었는데 아직 연방장관 한 명 배출하지 못못한 것은 우리 역사에 무관심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2세들이 역사를 모르고는 인물이 될 수 없다는 소리다. 오는 25일 출범하는 ‘애국지사 기념사업 캐나다위원회’의 항해 목적지도 이곳이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