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유람선 타이태닉호는 잔잔한 바다를 최고 속력으로 달렸다. 선장은 갑판 위에서 홍차를 마시며 조만간 신문에 대서특필될 ‘기록 경신’ 기사에 도취해 있었다. 배 안의 부유층 인사들은 저마다 돈 자랑하며 사교모임을 즐기고 있었다. 누구도 그 배가 빙산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천안함이 침몰되기 전만 해도 ‘대한민국호’는 ‘선진바다’를 향해 쾌속 질주했다. 원전 수주, 경제우등생, 밴쿠버올림픽신화 등의 뉴스에 들떠있었다. G20 정상회담을 앞두곤 ‘의장국 워밍업’에 들어갔다. 조선대국의 초계함이 ‘폭발점’을 향해 항해하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1912년 4월15일 새벽 2시18분 뉴펀들랜드 400마일 해상에서 타이태닉호는 침몰한다. 오늘의 화폐가격으로 무려 5억 달러를 들여 만든 타이태닉호는 크기와 호사스러움, 그리고 기술적인 면에서도 그야말로 세계 최고였기에 사고의 충격을 더했다.

신도 침몰시킬 수 없다던 타이태닉이 처녀취항에서 비운을 맞은 이유는 무엇인가. 선장을 잘못 만났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은 여객선계의 거물이었다. 노련하고 실력이 뛰어난 반면 고집이 세고 거만했다. 근처를 지나던 여객선들이 뉴펀들랜드 해협에 위험한 빙산들이 흘러내려오고 있다는 무전을 타이태닉호에 보냈는데도 선장은 무시해 버렸다. 배에 유명인사들이 많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뒷바라지에만 신경을 쏟았다.

스미스는 영국-뉴욕 노선 최단시간 기록을 세우기 위해 22노트(시속 40km)로 항해하도록 명령했기 때문에 빙산을 발견하고도 미처 피할 수가 없었다. 과시욕에 넋을 잃어 위기를 비켜갈 수가 없었다. 배가 빙산에 부딪히자 놀란 승객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속여 희생자가 더 늘었다.

2010년 3월26일 저녁 9시50분 해상경계근무 중이던 천안함은 침몰한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중인 서해에서 군함이 두 동강 난 것은 안보에 큰 구멍이 생겼다는 뜻이다. ‘대한민국호 선장’인 이명박 대통령은 준전시상황에 어떻게 대처했는가. 사태 발발 1시간 반 후 안보회의를 소집하고 “인명구조작업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하는 외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민들이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애타게 기다렸던 27일과 28일 대통령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안보회의를 수차례 가졌거나 “모든 장비를 동원하라”고 지시했다는 전언뿐이었다. 위기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게 초기대응이다. 국민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나와 당당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회의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더욱 실망스런 점은 “예단(豫斷)은 안 된다”는 대통령의 말이다. 예단은 오히려 청와대가 했다. 사태 첫날부터 “북한의 연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언론에 미리 ‘모범답안’을 제시한 것이다. 조사에 들어가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슨 증거가 있길래 그런 소릴 하는가. 또한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천안함 침몰이 내부 요인보다는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이며 외부 충격 중에서도 기뢰보다는 어뢰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증언하자 청와대는 즉각 제동을 걸었다. 방향 수정을 지시한 이 대통령의 질책성 메모가 국방장관에게 전달됐다고 한다. 대통령이나 청와대는 예단해도 괜찮고 국방장관의 예단은 안 된다는 말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 소행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기뢰나 어뢰 공격이 아니고선 1,200t에 이르는 전투함이 순식간에 두 동강 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거의 공통된 견해다. 이들의 시각을 차치하더라도 청와대가 전면에 나서 북한 연계성을 축소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저의를 의심케 한다. 제대로 된 위기관리는 “내적으로 외적으로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진상을 규명하겠겠다”는 식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군에는 이런 좌우명이 있다. ‘전투에서 패하는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경계를 소홀히 해서 패하는 것은 사형감이다’는 말이다. 태만과 기강 해이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소리다. 경제도 중요하고 ‘G20’도 중요하지만 안보가 있고난 다음의 문제다. 안보는 1%의 가능성에도 대비하는 것이다. 타이태닉은 꼭 98년 전 침몰했지만 지금도 가라않지 않을 교훈을 주고 있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