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간 자녀가 불량배에게 맞아 집에 왔을 때 부모의 반응은 보통 3가지다. “공부도 못하면서 사고만 치느냐”고 야단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래도 때린 애보다는 맞은 애가 다리 뻗고 잔다”며 위로하는 부모가 있다. 반면 “왜 바보같이 맞고만 있느냐? 힘이 없으면 ‘깡’으로라도 대들어 이겨야지”라며 한술 더 뜨는 부모도 있다. 이런 부모는 대개 애들이 싸우는 것을 “사내답다”며 되레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북한이 어떤 스타일인가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76년 판문점 도끼만행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왜 바보같이 맞고만 있느냐”고 야단치는 부모와 “그래도 맞은 사람이 편히 잔다”며 자제를 당부하는 부모를 둔 자녀의 기질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한 쪽은 ‘맹견’이 되어 있고 한 쪽은 ‘햄릿’이 돼버린다. 북한은 남한의 이런 기질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 반세기동안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도 남쪽을 향해 오히려 큰소리치는 이유다.
누가 천안함을 공격했는지는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겠지만 북한 소행으로 굳어지고 있다. 합동조사단이 외부충격에 의한 피폭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한 것은 사실상 북한을 지목한 것이다. 서해바다 밑에서 한국군함을 노리는 자가 북한 외에 또 있는가.
한국의 고민은 이제부터다. 어떻게 손을 보느냐다. 과거처럼 “얻어맞은 사람이 다리 뻗고 잔다”며 그냥 넘어가기에는 ‘선진한국’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 방 날리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다. 자칫하면 ‘불바다’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눈물로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런 다짐을 하면서 왜 눈물을 보여주는가. 실수했다는 느낌이다. 두 눈을 부릅뜨고 정면대응 의지를 내비쳐도 시원찮은 판국이 아닌가. 이번에도 햄릿의 선택은 뻔하다. 안보리 제재나 경제원조 전면중단을 들먹이다가 두루뭉실 넘어갈 것이다. 햄릿에게 군사대응이니 보복이니 하는 말은 어울리지도 않는다.
이쯤 되면 “그럼 전쟁이라도 하잔 말인가”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쟁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승패를 떠나 엄청난 참화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전쟁은 그 가능성에 대한 언급만으로도 국민들에게 공포감과 불안감을 안겨준다. 어떤 경우라도 전쟁은 막아야 한다. 전쟁을 막으면서 북한을 혼내줘야 한다. 무슨 방법으로?
전쟁이란 싸움을 거는 측과 막는 측의 쌍방 행위다. 전쟁은 어느 한 쪽이 시작하려 해도 막는 쪽이 확고한 방어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일으킬 수 없는 법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민의 전쟁공포는 북한의 전쟁 위협 탓이라기보다는 한국의 대비태세에 대한 불안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경제력이나 전쟁수행력에 있어 한국의 적수가 못 된다. 군사장비도 상당수가 고철수준이다. 그런 북한을 무서워하며 피하는 것은 북한의 사기만 높여줄 뿐이다.
손자는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상대에게 달려있고, 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내게 달려있다. 따라서 내가 지지 않도록 잘 대비하고 상대가 스스로 지는 상태에 이르게 되기를 기다리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전쟁을 막는 것은 한국인에게 달려있다는 소리다. 한국이 전쟁을 막을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북한이 아무리 호전적인 집단이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전쟁을 막겠다는 의지는 무엇인가. “전쟁할 테면 해보라”는 단호한 각오를 말한다. 만약 북한이 도발한다면 끝까지 싸워 전범들을 처단하겠다는 결의를 뜻한다. 모든 한국인이 이런 마음을 갖는다면 북한의 전쟁의지는 꺾이게 마련이다. 반면 전쟁공포로 북한이 협박할 때마다 벌벌 떤다면 북한은 더욱 기고만장하게 될 것이다. 협박의 본질은 일단 성공하면 또 다른 협박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갈수록 협박의 강도가 세지며 요구사항도 많아진다. 오늘날 북한이 저 모양이 된 데는 한국의 책임도 크다.
전쟁을 하려는 자에게 부드럽게 대할 때 오히려 전쟁이 촉발되고 역으로 세게 나갈 때 전쟁이 억제된다는 것은 인류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각오하라’는 로마 때부터의 명언에 귀 기울여야 한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