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아는 건 쉽지 않다.
 떠날 때를 안다는 것은 더 어렵다. 더욱이 정상에서 제 발로 걸어 내려오는 건 불가능한 일. 그래서 비극도 많았다. 멀리 찾을 것도 없다. 18년간 절대권력을 행사하다 비운에 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랬다. 

 최근 난해한 인물을 보았다. 로레나 오초아. 여자골프계에서 소렌스탐 이후 지존으로 군림하던 그녀가 홀연히 필드를 떠났다. 떼로 몰려 LPGA 장사를 망친다고 손가락질 받는 수십 명의 한국 낭자군도 끝내 오초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지난 3년간 세계 정상을 굳건하게 지켜왔기에 그녀의 은퇴는 놀라웠다. 왜 그랬을까. 그녀가 밝힌 이유는 짧다. “1인자일 때 물러나고 싶었다.” 쉽게 말해 추한 모습으로 내려오지 않겠다는 것. 발표날짜도 절묘하다. 오초아가 은퇴선언을 한 4월23일은 바로 3년 전 아니카 소렌스탐을 꺾고 세계랭킹 1위에 오른 날이다. 심사숙고 끝에 그날을 고른 흔적이 역력하다. 

 여자골프계를 더 오래, 더 강하게 지배했던 직전 챔피언 소렌스탐도 정상에서 떠나는 기쁨을 누리지는 못했다. 2008년 5월 소렌스탐은 미켈롭 울트라 오픈에서 오초아를 누르고 우승한 뒤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해버리고 말았다. 

 이유는 “오초아를 이겼으니 더 이상 미련이 없다.” 당시 소렌스탐은 오초아에 밀려 세계랭킹 2위에 머물고 있었다. 

 오초아는 그동안 약간 흔들리는 기색을 보인 적은 있어도 소렌스탐과 달리 세계랭킹 1위 자리를 빼앗겨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정말 왜? 그녀는 지난해 멕시코 최대 항공회사인 아에로 멕시코 사장과 결혼했다. 재벌 사모님이 되어 더 이상 골프를 쳐야 할 이유가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또 치밀한 계산이 뒤따랐을 수도 있다. 프로페셔널들은 이른바 ‘손실회피’ 전략을 자주 써먹는다. 잘 나갈 때 물러남으로써 다음 흥행에서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구사하는 기법을 말한다. 

 구체적인 사례도 많다. 올림픽 피겨 금메달리스트 19명 가운데 15명이 금메달을 딴 즉시 은퇴했다. 20살 젊은 김연아가 은퇴를 고민하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골프는 피겨와 다르다. 50대도 세계정상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인 골프에서 28살이라면 한참 물오를 나이다. 

 은퇴 이유가 무엇이면 어떠랴. 어느 분야든 피땀 흘려 차지한 왕관을 스스로 벗어던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나고 나면 아름다움만 남는다. 특히 사람 얘기는 더욱 그렇다. 오초아를 미화하는 일에 동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들려오는 조각얘기에 따르면 그녀는 겸손하다고 한다. 대스타가 빠지기 쉬운 오만과 선민의식이라는 함정에 매몰되지 않았다 한다. 게다가 약자에 대한 배려가 남달랐다는 것. 

 그녀가 미국에서 바닥 생활을 하는 조국 멕시코 사람들에 대해 깊은 애정과 연민을 보일 때마다 솔직히 말해 참 기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확실히 여느 프로골퍼와는 달랐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에서 사내들에게서 볼 수 없는 장부의 기개를 보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움, 신선함, 아쉬움만 남기고 떠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하루 한 날 쉼 없이 바닥싸움에 온몸을 던진 실협과 협동조합 관계자들이 새겨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