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80부터다. 집에서 TV만 보지 말고 밖으로 나가라. 80에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일들이 많다.” 수년 전 조지 부시 전 미국대통령이 자신의 80세 생일기념으로 약 4천m 상공에서 낙하산으로 점프한 후에 한 말이다.

부시 경우는 특별한 케이스지만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70인데도 젊은이 못지않게 활동하는 어르신들이 적지 않다. 본보 7일자에 보도된 구상회 박사도 그 중 한 명이다. 수년 전 은퇴한 그는 지금도 의사시절만큼이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ESL영어교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 다녔고, 자격증을 얻은 후에는 새 이민자 등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문인협회 신춘문예 번역분야에 당선돼 문협회원으로, 애국지사기념회 고문으로도 활동 중이다. 수년 전에는 본보 영어웅변대회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고 자원봉사에도 적극적이다. 매주 2~3회 정기적으로 10~20km씩 뛰는 스포츠 마니아이기도 하다. 그의 삶을 보면 인생은 60부터가 아니라 70부터다.

‘고공낙하 할아버지’와 ‘젊은 의사선생님’이 부러운 것은 나이를 잊은 도전정신과 식지 않은 열정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쉴만한 나이가 되었는데도 쉬지 않는 것은 바쁘게 살아가는 시니어의 모습을 사회와 가정에 보여줌으로써 모범이 되겠다는 의지도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자신의 건강만을 목표로 골프와 여행으로 노후를 즐기며 사는 사람과는 다른 세계의 삶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한국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고 북미에는 어머니날이 있다. 아무리 핵가정시대라도 집안의 중심에는 어르신들이 있다. 대부분의 자식들은 부모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함을 느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다. 어르신들이 가정적이나 사회적으로 모범을 보여주기보다는 짐으로 느껴져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오늘의 어르신들은 그들의 부모세대를 극진히 모셨고 궁핍한 환경 속에도 자식들을 위해 마지막 쌈짓돈까지 아낌없이 준 세대다. 자신의 노후를 위해 따로 준비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 분들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공경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의무이자 도리다.

가장 바람직한 어버이상은 사회의 어른으로 존경받고, 자식들에게도 모범을 보여주는 분들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사회봉사활동을 하고 영어 등 어느 과목이나 분야를 공부하는 자세를 보여준다면 자기발전은 물론 이보다 더 좋은 자녀교육은 없다고 본다. 자녀들도 부모들의 이런 모습을 본다면 저절로 공경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우린 자식을 위해 할 일을 다 했고 희생한 세대이므로 이제는 모셔라”라고 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공경이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어르신 일자리 박람회’가 열리고 특히 사회기관에서는 전문직 은퇴자를 위한 직장 알선사업이 정착돼가고 있다. 돈보다는 파트타임으로라도 출근해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고 아울러 사회봉사를 원하는 어르신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한인사회도 이와 비슷한 것을 추진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집안에 있는 어르신들이 외부활동을 함으로써 보다 활기찬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사회에도 어르신들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지만 언어문제나 작업환경문제로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돈보다는 외부활동을 원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일자리를 개발하고 공익에 기여할 기회를 주는 것 이상으로 더 큰 공경은 없다고 본다. 그 이전에 어르신들 스스로가 자식들에게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자립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여성회의 새 도약 기대한다

캐나다한인여성회에 경사가 생겼다. 13년 만에 자선단체(Charitable License) 자격을 회복,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7일자 A3면). 자선단체로 등록되면 면세영수증을 발급할 수 있어 각종 모금행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고 정부지원금 신청 등 대외관계에도 유리한 점이 많다.

지난 85년 창설된 여성회는 5년 만인 91년 자선단체자격을 취득했지만 97년 사무실 이전과 사무장 인수인계 과정에서 의무사항인 재무보고를 이행하지 않아 자선단체 자격을 상실했다. 이후 자격회복을 위해 문서관리를 철저히 하고 사무장·변호사 등의 전문인력을 중심으로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인 바 마침내 숙원을 성취하게 된 것이다.

여성회는 커뮤니티에서 가장 모범적인 단체 중 하나로 꼽힌다. 창설 초기에는 일부 여성들의 친목모임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연 예산이 50만 달러가 넘고 직원도 13명이나 둔 커뮤니티 최대의 봉사단체로 성장했다. 정착·취업·가정상담·생활강좌 등 한인들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광범위하게 제공함으로써 남성이용자들도 크게 늘었다. 사실상 제2의 한인회 역할을 하는 셈이다.

오늘의 여성회가 있게 된 것은 이사 및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이다. 주로 전문직에 종사하는 이사들이 똘똘 뭉쳐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해 정부지원금을 타냈고 이를 적절히 활용했다. 다른 단체들이 본받을 점이다.

여성회는 이번 자선단체자격 회복을 계기로 노스욕에도 사무실을 신설하는 문제를 검토했으면 한다. 현재 사무실은 다운타운에 있어 교통이 복잡하고 주차공간이 상당히 부족한 바, 한인밀집지역에 사무실을 연다면 이용자가 더욱 늘어 협회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