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씨는 아직도 심연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지난주 뉴질랜드에서 날아온 비극적인 소식 때문이었다. 한인 세 모녀가 한꺼번에 목숨을 버렸다고 했다. 장례를 치르려고 한국서 달려간 아빠도 곧바로 사랑하는 가족을 뒤따라 가버렸다는 것.
지구 남반부 반대편 아득한 곳에서 일어난 ‘기러기’ 가족의 비극이었지만 결코 먼 곳의 일이 아니었다. 자살에 대해 평소 냉정한 C씨도 그 아빠가 겪었을 바닥모를 절망과 극단적인 실행 앞에서 자신도 그 경우라면 그 이상의 선택을 하지 못했을 것이란 깊은 동류의식에 빠져 들었다. C씨도 한때 기러기였다.
‘기러기’란 말의 어원은 확실치 않다. 이미자의 노래 ‘기러기아빠’에서 비롯됐다는 설에 기러기란 새의 특징이 가미돼 유력하게 떠돈다. “산에는 진달래, 들엔 개나리, 산새도 슬피 우는 노을 진 산골에, 엄마구름 애기구름 정답게 가는데, 아빠는 어디 갔나 어디서 살고 있나, 아아아 아아아아, 우리는 외로운 형제, 길 잃은 기러기” 가사 전문을 보면 ‘이미자 노래설’이 그럴싸하다.
하고많은 새 중에서 왜 기러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흔히 쓸쓸함을 표현할 때 기러기를 동원했던 우리 선조들의 문학적 상상력을 봐도 쉽게 이해가 된다. 처자식을 해외로 보내고 혼자 남은 처연한 아빠 모습을 비유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새는 없을 듯싶다. 더욱이 먼 거리를 날아가 새끼의 먹이를 구해 오기까지 한다니.
언제부터인가. 90년대부터일 것 같다. 글로벌 인재, 영어교육, 조기유학 열풍이 불더니 “이럴 바에야 아예…” 한국에서 안정된 기반을 잡고 있는 아빠는 남고 아이와 엄마들에 이삿짐을 싸기 시작했다. 캐나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한국엔 기러기아빠, 외국엔 기러기엄마와 자식들. 이렇게 해서 기러기가족은 기이한 사회현상으로 떠올랐다.
고통은 기러기아빠만의 몫일까? 기러기엄마에겐 남모를 아픔은 더 많을 것이다. 돈과 시간이 넘쳐 걱정인 엄마에게야 이국생활 자체가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대부분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경제문제, 자녀교육, 가족이산은 엄마 혼자 등에 지기엔 너무 버거운 짐이다. 골프와 향락에 몰입하는 등 정상궤도에서 일탈하는 사례는 극히 일부일 뿐.
기러기라고 똑같은 기러기일 수는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모습으로 분화했다. 기준은 역시 돈이었다. 가족이 보고 싶으면 세상 거리낄 것 없이 언제든 날아갈 수 있는 기러기아빠, 그는 ‘독수리’로 진화했다.
보고 싶어도 참으며 시간을 쪼개고 돈을 꾸깃꾸깃 모아 1년에 몇 차례 감격적인 상봉을 하는 기러기. 철새처럼 정해진 계절에 찾아오니 그는 그냥 기러기로 남았다.
마지막.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기러기, 날지 못하는 기러기는 펭귄으로 퇴화하고 말았다.
‘펭귄아빠’가 생겨나면서 또한 비극의 씨앗도 잉태됐다. 한국에선 홀로 외롭게 독방에서 숨진 펭귄아빠 기사들이 심심찮게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이때마다 C씨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그리고 항상 저 깊은 구석에서 들리는 외침을 외면할 수 없었다. “당신 지금 뭐하는 짓이야?”
뉴질랜드 사건은 가장 전형적이고 종합적인 기러기가족 비극이다.
남편으로부터 송금이 줄어들고 급기야 살던 집마저 은행으로 넘어가게 되자 엄마가 두 딸을 데리고 동반 자살했다. 사업실패로 기력을 잃은 기러기아빠에게 날아온 아내와 18살, 13살 두 딸의 사망소식은 그에게서 살아야 할 한 줄기 이유마저 앗아가 버렸다. 아빠는 장례식날 같은 방법으로 세상을 버렸다.
몇 해 전 철새생활을 접고 캐나다 텃새가 된 C씨는 주변에서 기러기가족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다. “죽을 먹어도 가족과 함께 나눠 먹어라.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확실한 현재를 희생시키는 게 가장 바보 같은 투자행태다”
C씨는 뉴질랜드사건 이후로 그마저 할 말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