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개월간 끝없는 내부 소모전을 벌였던 온주실협의 전선이 급기야 소송전으로 비화했다. 강철중 실협회장 등은 오철수 협동조합 부이사장과 한국일보를 상대로 총 30만 달러 명예훼손 손배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강 회장은 취임 초기 임시총회를 추진했던 대표, 협동조합과 운영이사 개개인 등에게도 고소·고발 등 법적조치를 예고하는 변호사편지를 수차례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협회장이 임기 중에 회원과 언론사 및 부대사업체인 협동조합 등을 상대로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소송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37년 실협 역사상 처음이다. 물론 소송 예고 건들의 경우, 단순한 예고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오철수 부이사장 건과 임총 소집에 대한 행정소송 건은 이미 법적 절차에 착수한 상태로 실협과 조합에 또 한 차례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비즈니스에 전념해야 할 양대 경제단체가 송사문제에 휘말리게 된다는 것은 소송 관련자들은 물론이고 두 단체의 장래를 위해서도 심히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은 강 회장 등이 정식 제소한 ‘폭행공방’ 관련 기사에 대한 본보 입장을 밝힌다. 본보는 약 3주 전 원고(실협·강 회장·주점식 헐튼지구협회장)의 고소장을 받고도 즉각적인 대응은 자제하고 가급적이면 대화로 풀려고 했다. 본보 기사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반 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실협과 조합의 대치상황 속에서 또 하나의 소모전을 만들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 때문이다. 강 회장 측과 오철수씨의 화해를 주선하는 등 다각적인 시도를 한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끝내 물거품이 됐다.
강 회장 등은 고소장에서 “한국일보의 ‘실협이사 폭행공방’ 기사(2월18일자)는 잘못되고 악의적인 보도로 주점식 회장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또한 “‘비디오 조작’ 논란 기사(3월31일자 및 4월20일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강 회장과 주 회장이 폭행사실을 숨기려 동영상을 조작했다고 믿게 한다”고 주장했다. 고소장은 이런 주장 외에 “한국일보 기자가 일부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동영상 원본파일을 변환 축소한 것을 알면서도 편집 또는 조작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등을 명예훼손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원고 측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신문사는 공인이 연루된 사건기사는 거의 쓸 것이 없게 된다. 공식행사장에서 오고간 발언이나 실제 일어난 일들을 토대로 작성한 기사를, 그것도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양측 주장을 함께 실은 기사들을 오보 내지는 악의적인 보도로 몰아붙인다면 과연 언론이 설 자리는 있을까. 신문사는 사실을 보도할 뿐이며 판단은 독자가 하는 것이다. “당사자의 사진을 실어 명예가 훼손됐다” “전문감정기관의 감정확인서까지도 기자가 진위를 확인해야한다”는 고소장 주장에는 할 말을 잃게 된다. 고소를 위한 고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강 회장 등이 성급하게 법정행을 택한 것도 쉽게 납득이 안 간다. 만약 그들의 주장대로 본보 기사에 문제가 많았다면 변호사를 고용하지 않고도 시정을 요구할 방법은 여럿 있다. 본보에 반론이나 정정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낼 수 있고, 본보가 회원으로 속해있는 온타리오신문방송협회(Ontario Press Council)에 서면항의할 수도 있다. 어느 방법이든 기사가 잘못된 경우라면 본보는 주저 없이 바로잡았을 것이며 또 지금까지 그래왔다. 하지만 그들은 돈 들이지 않고 대화로 해결하기보다는 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언론의 추적과 보도는 개인의 명예와 상충될 때도 있다. 개인의 명예 역시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가장 중요한 기본인권 중 하나이며 책임 있는 언론기관은 그 보장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독자의 알권리와 개인의 명예권이 상충될 경우 언론은 대개 독자의 알권리를 우선해왔다.
이와 관련된 캐나다의 대표적인 판례를 소개한다. 온타리오항소법원(주 최고법원)은 지난 2007년 11월 전 경찰관이 오타와시티즌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과 관련, 언론매체가 대중의 알권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명예에 손상을 입히는 것을 인정하는 판결을 국내 처음으로 내렸다. 언론사는 더 이상 특정인에 대한 ‘파괴적인’ 내용이 진실인지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판결이다. 해당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진실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된다는 것이다.
작년 12월 연방대법원도 “보도가 공익을 위한 것일 때는 이와 관련한 명예훼손소송에서 공익과 언론보호가 우선”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캐나다판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 판결로 볼 수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64년 "악의가 없는 한 언론은 공인의 공공업무와 관련해 어떤 말도 할 수 있다"는 유명한 판결을 내렸었다.
실협과 조합은 창설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실협이 지금처럼 분열된 적은 없었고 조합이 지금처럼 어려운 경영환경에 처한 적도 없었다. 자구책을 모색해도 살아남기 힘든 판에 내놓은 카드가 고작 ‘언론 및 회원들과의 송사’인가. 잘못된 길로 항해하는 배의 방향을 유턴시키는 것은 결국 회원과 조합원들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