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모국땅에서 지방선거가 있었다.
결과야 모두 익히 알고 있을테니 반복할 필요는 없겠다. 예기치 못한 일에 한국정치권과 주권자인 장삼이사(張三李四) 국민은 물론 바다 건너 교민들까지 적잖이 놀란 듯하다. 그럴싸한 분석이 쏟아졌다. 다들 정치평론 전문가 이상의 식견이었다. 그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말이 있었다. ‘숨겨진 민심’.
굴곡진 현대사에서 알게 모르게 체득한 자기방어 본능인지, 막연한 두려움인지 아니면 타고난 의뭉스러움 때문인지 한국인들은 정치적으로 솔직하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여론조사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
이는 그동안 여론조작에 몰두했던 모국의 일부 언론과 여기에 부역(附逆)한 여론조사 업체들의 자기변명일 수도 있다. 이왕 말나온 김에 다 아는 얘기지만 여론조사의 맹점을 짚어보자. 여론조사는 주로 일과시간 중에 전화면접 방식으로 진행된다.
벌건 대낮에 집에서 전화를 받는 사람은 대부분 주부 또는 노인층이다. 20~30대 신세대들은 집에서도 유선전화와는 담을 쌓은 채 휴대전화를 끼고 산다. 우연히 통화가 이루어졌다 해도 시민들은 목적성을 띤 조사에 무관심 또는 적대감마저 표시한다.
정확하게 대답할 리 만무하다. 여론이 제대로 반영될 수 없는 구조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여론조사 업체들이 이런 한계를 모를까? 천만에. 잘 안다. 그럼에도 조사를 진행한다. 틀린 줄 알면서도 강행하고 일부 신문들은 조사결과를 지면에 적극 반영한다. 조사 내용이 공표되면 유권자들은 ‘판세’를 예단(豫斷)할 수밖에 없다. 나오지도 않은 선거결과를 지레 짐작하고 아예 포기하거나 포기했다는 의사를 주변에 표명한다. 숨기지 않으려 해도 민심은 숨을 수밖에 없다.
이게 한국의 여론조사 현주소다. 전형적인 여론조작이다. 심하게 말하면 미필적 고의(未畢的 故意)에 의한 범죄행위에 다름 아니다. 선거직전까지 모든 언론, 특히 한국에서 주류를 자임하는 신문과 방송들은 예외 없이 이번 선거를 일방적인 게임이라 예고했다.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구체적인 조사 결과까지 들이대니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구촌시대 정보가 태평양 건너오며 뒤바뀔 일은 없을 테니 이곳 캐나다에서도 모국 거대언론의 여론조사를 믿을 수밖에. 사실 필자도 모국의 언론현실을 남보다 잘 안다고 자부해왔다. 또 여론조사 문제가 심각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런 이유를 감안한다 해도 한국인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 특히 정치적 견해를 밝히기 꺼리는 건 사실이다. 결국 소신을 펼 수 있는 공간은 밀폐된 투표소밖에 없다. 한국에서 6,70년대식 고무신 막걸리 선거가 자행된다는 얘기가 없는 걸 보면 선거결과는 민심 그 자체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투표행위를 통해 속내를 털어 놓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내가 주인인 사회에서 2년 또는 4년에 한 번 투표소 커튼 뒤에서 주인노릇을 하고 나머지 기간은 침묵을 강요당한 채 산다면 이건 죽은 사회다.
옛날 생각하면 이 정도라도 감지덕지? 아니면 남북 대치국면에서 이만한 정치적 자유를 누리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라는 자조(自嘲)도 있을 것이다. 21세기 세계 11위 경제대국 한국의 정치적 위상을 70년대 공포정치 시절의 잣대로 재려는 발상이다.
민심을 숨기는 사회는 불행하다. 더욱이 민심을 숨길 수밖에 없는 사회,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회라면 더 불행하다. 토론토 한인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언론은 사회의 거울이다. 언론이 여론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여론을 외면하거나 왜곡할 때 사회는 부패한다. 한국일보가 한인사회에 희망을 주는 신문, 한인경제를 살리는 신문, 당당한 신문을 자임하며 숨겨진 민심까지 비출 수 있는 ‘맑은 거울’을 지향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