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빌딩 높이에서 고공줄타기를 하는 서커스를 보고 있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직경이 불과 5m 정도인 철제 돔 안에 6대의 오토바이가 빙빙 돌아가는 묘기를 보면 말 그대로 손에서 땀이 날 지경이다.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새삼 놀라게 된다. 고공줄타기의 황제로 불리는 링링브라더스 서커스의 퀴로에게 어느 기자가 질문한 적이 있다. “당신이 어떤 상황에서도 줄 위에서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냐?”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비결은 없다. 오로지 피나는 훈련뿐이다.”
퀴로에 따르면 보통사람도 하루 6시간씩 3년 정도 연습하면 5피트 높이의 줄타기는 할 수 있다. 고공줄타기는 강인한 정신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별도의 트레이닝을 받아야 한다. 마음이 흔들리면 몸도 흔들리기 때문이다.
서커스는 묘기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메시지도 준다. 끊임없는 훈련이다. 말이나 이론보다는 행동이다. 곰이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도 조련사가 어릴 때부터 같이 생활하며 끊임없이 훈련시킨 노력의 결과다.
서커스만큼 신기한 것으로 마술을 들 수 있다. 인터넷을 보면 별의별 마술 동영상들이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너무 싱겁다. 처음에는 신기하게 보이지만 모두가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피나는 훈련이 바탕이 된 서커스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느닷없이 서커스 얘기를 꺼낸 것은 요즘의 경제 때문이다. 유럽경제에 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세계경제의 두 축인 미국과 중국에서도 더블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V자 회복론이 우세했던 점을 감안하면 분위기가 상당히 반전된 것이다. 경제에 비결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새삼 절감한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금융위기를 완전히 극복하기까지는 고공줄타기만큼이나 피나는 훈련과 시일이 요구된다는 소리다.
1년 전 이맘때로 되돌아가보자. 그때도 경제학자들은 크게 두 파로 나눠져 논쟁을 벌였다. 조만간 경제침체가 끝나면 V자형으로 반등할 것이란 낙관론과 전 세계가 일본식의 ‘잃어버린 10년’을 맞을 수도 있다는 비관론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당시 내로라하는 학자들 중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이제 환자(세계경제)가 중환자실에서 나왔지만 회복엔 5년 이상 걸릴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가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금융위기가 길어지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면도 있다. 고통이 큰 만큼 가슴에 잘 새겨두면 다음 위기에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에 공짜점심은 없다. 한 나라가 위기를 극복하려면 국민적 훈련이 요구된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국민훈련 없이는 고공줄타기를 해낼 수가 없다. 요즘 한국경제가 잘 나가는 것은 IMF시절에 이미 ‘논산훈련소’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글로벌경제는 어떤가. 지금까지 금융위기를 비교적 쉽게 넘길 수 있었던 것은 각국 정부가 천문학적인 경기부양자금을 살포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헬리콥터를 동원해서라도 달러를 뿌리고, 또 뿌릴 달러가 모자라면 돈을 찍어내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한 덕에 일단 불을 끌 수는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헬리콥터’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법이다. 각국 정부의 출구전략이 가시화하거나 일부에서 이미 시행되면서 V자형 회복에 제동이 걸렸다. 최근 더블딥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주된 이유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더블딥 도래설은 어디까지나 비관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지구가 망할 것처럼 떠들어댔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경제재앙 예측은 신종플루 대유행설과 마찬가지로 빗나가고 말았다. 세계는 그들의 생각보다 더 안정적이라는 게 판명됐다.
앞으로 각국 정부의 출구전략이 궤도에 진입할수록 경제가 다시 고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폴 크루그먼 교수가 말한 대로 ‘중환자 회복기’로 생각한다면 비관적으로만 볼 일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지난 2년간 글로벌경제는 ‘조기 퇴원’만을 생각한 나머지 경기부양자금이라는 진통제를 과다복용한 측면도 있다. 진정한 쾌유는 진통제 마술이 아니라 재활훈련에 달려 있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