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화분을 발코니 뒤편으로 옮겼다.

빨간 깃발이 꽂혀있는 작은 화분은 언제나 발코니 앞에 놓여 있었다. 급하게 만날 필요가 있을 때만 자리를 바꿔 놓았다. 다음날 아침 집으로 배달된 신문엔 새벽 2시 시계바늘이 그려진 메모지가 끼워져 있었다.

밤이 이슥해지자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새벽 2시 정각. 주차장 저쪽에서 조심스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렸고 이내 저벅저벅 다가온다. 그 사람이다. 휴~ 안도의 한숨. 두 사람은 얼마동안 소곤소곤 속삭이다가 헤어져 급하게 서로 다른 방향으로 사라진다.

첩보영화의 한 장면 같다. 실제 어떤 첩보영화보다도 더 긴장감 넘치는 이 이야기는 1972년에 일어났던 실화다. 주인공은 밥 우드워드와 익명의 제보자. 무대는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 모든 ‘게이트’ 시리즈의 큰형님격인 워터게이트 사건이 본격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밥 우드워드는 워싱턴포스트의 피 끓는 새내기 기자였고 또 다른 주역인 익명의 제보자는 이른바 ‘딥쓰로트(Deep Throat)’였다. 이 사람의 정체는 신문사 내에서도 우드워드와 동료기자 칼 번스타인, 편집국장인 밴 브래들리 등 극소수만 알 뿐 완전히 베일에 가려졌다. 신문사에선 그를 ‘딥쓰로트’란 암호명으로 불렀다.

딥쓰로트는 얄궂게도 ‘목구멍 깊숙이’라 번역하면 더욱 실감날 것 같은 인기 포르노 영화 제목이었지만 영광스럽게도 워터게이트 이후 내부제보자 또는 내부고발자란 뜻으로 굳어졌다.

사건의 시작은 1972년 6월1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워싱턴DC 워터게이트 건물 경비원 한명이 건물 후미진 곳에서 묘한 물건을 발견했다. 테이프로 칭칭 묶여 벽에 붙어 있는 모습이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았다. 경찰에 신고했다.

즉각 출동한 경찰은 같은 건물에 입주해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 사무실에서 괴한 5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이들은 이미 3주 전에도 침입한 적이 있었고 그때 붙여놓은 도청기가 잘 작동하지 않자 새로 설치하기 위해 들어온 것으로 밝혀졌다. 예사로운 좀도둑이 아니었던 것.

정당 수뇌부를 도청하려 한 이 사건은 미국과 전세계를 뜨겁게 달궜다. 고비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이 사건발생과 은폐의 주역이라는 정확한 물증들이 터져 나왔다. 내부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온 것은 분명한데 누구 짓인지는 오리무중(五里霧中).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사건이 난 지 2년2개월 만인 74년 8월9일.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악순환 끝에 마침내 닉슨은 상원의 탄핵위기에 몰려 권좌에서 내려오고 만다.

우드워드와 그의 동료기자 번스타인은 일약 영웅으로 떠올랐다. 언론계의 노벨상인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그러나 진짜 주인공, 딥쓰로트는 여전히 장막 뒤에 숨어 있었다.

그가 정체를 드러낸 것은 사건 33년 후인 2005년. 스스로 걸어 나와 자신이 딥쓰로트였다고 고백했다. 72년 당시 모든 범죄정보를 한 손에 쥐고 있던 미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던 마크 펠트였다.

이문옥, 김용철. 이들의 공통점은? 내부고발자들이다. 마크 펠트와 다른 점은 공개적으로 이름을 걸고 내부모순을 밖에 알렸다는 점이다. 따라서 내부고발자의 또 다른 영어 이름인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Whistle-Blower)’이 더 어울린다.

내부고발자는 신분이 드러나면 큰 위험에 노출된다. 조직을 배신한 것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내부고발로 공익(公益)을 누리게 된 일반인들마저 그들을 은근히 경멸하기도 한다.

오죽하면 내부제보자 보호법이라는 게 생겼겠는가? 안타깝게도 내부제보와 밀고(密告)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인식 때문이다. 한국에선 정상적인 신고도 “몰래 일러바친다”고 여기는 일이 종종 있다. 좋으면 신고, 나쁘면 밀고라 생각한다.

최근 한인사회에서 자중지란(自中中之亂)인지 호루라기를 분 것인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무튼 누군가는 호루라기를 불어야 한다. 다소 시끄럽겠지만 그게 한인사회가 더욱 건강해지는 지름길이다. (조영권 편집국장)